나는 여름이 정말 싫다. 피부의 끈적거림, 목덜미에 질척이며 달라붙는 옷깃,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 모두가 진저리 나는 감각이다. 이번 여름의 습기는 이런 싫은 감정을 배가 시킨다. 에어컨 찬 기운을 싫어해서 선풍기 바람에 매달려 보지만, 후터분한 공기만 돌고 돈다. 이맘때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면증이 찾아온다. 안 그래도 매일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인데, 자면서 몇 번씩 깨고 나면 늘 머리가 맑지 않다. 여기까지가 이곳에 근무하면서 여름마다 찾아오는 계절병인데, 올해는 악질병이 추가됐다.
그 악질병은 간헐적 우울감이다. 올해 유난히 습기 많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작년까지는 없었는데 유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가끔 막연한 우울감에 빠져 무기력해질 때가 많아졌다. 이런 날은 매사 부정적이 되어 버린다. 남이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던진 이야기도 곱씹어 듣게 된다. 분명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정상적인 관계는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 스스로 감정적인 고립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해결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우려가 생각의 중심에 머물면서 무력감이 지속된다.
십 년 전, 부산에서 근무할 때, 불면증과 우울증 초기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 개월을 참고 지내봤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고 서울에 있던 가족을 만나러 갔을 때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다. 한 번의 경험 만으로 괴로움의 강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우울감과 관련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내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던 시기에 일어나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었다.
먼저 일어난 사건은 이른바 자살미수다. 저녁 아홉 시를 넘긴 시간에 위층에서부터 순찰을 돌면서 내려오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고함소리와 쿵쿵거리는 소음이 났다. 급하게 내려와 보니 세대 앞과 통로, 엘리베이터실에 혈흔이 낭자하다. 이미 사건은 종결된 상태라, 남아서 뒤처리 중이던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입주민의 자살 충동 낌새를 눈치챈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출동한 경찰이 칼을 들고 있던 입주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상을 입었고, 곳곳에 혈흔이 낭자하게 만든 주인공이 되었다.
야간에 일어난 사건이라, 낼 윗사람에게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CCTV를 확인했다. 경찰이 수차례 초인종을 누르면서 전화통화를 시도하자 안에서 출입문을 열어줬다. 순순히 출입문을 열어준 것은 의아하게 생각되었지만, 어쨌든 입주민의 신체에 이상 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양손을 결박한 채로 끌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리 젊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을 듯한 사람이 무슨 심적 고통이 많았을까 안타까웠다. 아마도 내가 받은 것보다 더 큰 감정적 고립감에 의한 우울증세가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이어 일어난 다른 사건은 여자친구의 잠적이다. 저녁 여덟 시쯤, 젊은 남자가 잠겨진 관리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들어오게 해서 자초지종을 들으니, 이곳에 살고 있는 여자친구가 일주일째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서 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이 가입되어 있는 모임의 단체 문자도 열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근히 불미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찾아온 듯 말도 행동도 조급했다. 그렇지만 나는 입주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사회적으로 스토커가 많은 문제를 일으킨 예는 너무나 많았으니까.
젊은 남자가 내가 근무하는 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최근 그 여자 입주민의 안위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남자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CCTV를 통해 확인한 그 여자 입주민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 사실을 젊은 남자에게 알려주었지만 신뢰감을 갖지 못한 듯, 경찰에 신고하여 관할 파출소 순경들이 들이닥쳤다. 순경들이 초인종을 누르자 그 여자 입주민은 문을 열었고, 신고자와 통화를 시켜줌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다. 궁금한 것은 그 여자 입주민의 심리상태였다. 남자친구는 물론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까지도 끊고 잠적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 친구는 물론 모임에서 타인들과 교류는 하고 있지만, 감정적 고립에 의한 일시적 충동이 잠적의 원인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우울증세의 단계로 본다면 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 명의 입주민 중 남자 친구가 찾아온 경우는 중간 단계, 자살미수의 경우는 심각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마치 우울감이 심해지면 나타나게 되는 증상이 단계 별로 구현된 듯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울감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여튼 두 명의 입주민들이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서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제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안 좋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나를 어떻게 돌보는가이다.
나는 간헐적 우울감의 근본 원인을 격일제 근무로 보고 있다.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는 잠, 친구와 푸근하게 회포를 풀기에 거북스러운 마음에 여유, 뭔가를 더 배우고 싶지만 단절되는 시간으로 인해 시도 조차 할 수 없는 한계, 연로한 나이에 독거 중인 아버지를 돌봐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로 인해 욕구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이제 두 달 만 버티면 이런 제약에서 해방되지만, 이미 한계점에 다다라 있는 느낌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마라톤 황 영조 선수가 2킬로미터 채 남지 않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선수를 제치고 우승하던 기억이 난다. 역대 올림픽 마라톤의 가장 난코스에서 일본 선수와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였다. 그렇다. 내가 몬주익 언덕을 달리고 있고 옆에는 간헐적 우울감이라는 선수와 경쟁을 하고 있다 생각하자. 황영조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질 수 없었듯, 간헐적 우울감에 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가져 보기로 하자.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상이변이 여름을 더 무덥게 할 수는 있지만, 절기마저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지루한 여름도 수명을 다해간다는 사실을 믿고, 나를 토닥이며 희망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