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한참을~~~~~. 사이렌 소리가 꿈에서 생시로 달려 나오자, 비로소 잠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시계는 새벽 네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고, 화재수신기에서 주음향이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일단, 주음향을 정지시키고 CCTV를 통해 화재수신기에 표시된 4층의 상태를 확인했다. 화재 징후로 볼 만한 특별한 상황은 없었고, 곧이어 축적 복구라는 절차를 거쳐 상황이 해제되었다. 거의 한 시가 다 되어서 잠들었으니, 세 시간 반 밖에 자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놀라서 달아난 잠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았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나는 꿈속에서 동해 바다를 보며 티샷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잔디를 밟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잠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다 보니 골프와 인연이 점점 멀어지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번엔 과감히 욕심을 부려 연차까지 내고 참석하기로 했던 터였다. 본래 최상의 컨디션으로 가도 오랜만에 치는 공은 잘 맞지 않게 되어있다.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게다가 어제 근무 중에 허리도 삐끗한 데다, 이제 서울서 동해까지 육백 리를 운전해서 가야 했다. 이 정도면 경험으로 보아 정상적인 골프보다는 곳곳에 잔디를 파내면서 뽈~~~ 만 외치다 돌아올 가능성이 많았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홍천 휴게소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설레지 않아?" 아내는 쓴웃음을 지으며, "당신 때문에 따라온 거야." 한다. 사실 아내는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배우기는 배웠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듯하다. 더구나 이렇게 1박 2일로 멀리 이동해서까지 하는 것을 꺼려한다. 강행군하듯 근무하고 있는 내가 모임에 끼고 싶어 하니까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 것이다. 계획을 알려주니, 당신에겐 무리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었다. 며칠 전에 어머니 4주기여서 원주 다녀오면서 아버지와 거나하게 술도 먹고 온 터라 피곤이 쌓여 있을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무리한 일정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미 어려운 근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다른 일정을 무리하게 끼워 넣어 허덕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갑갑한 생각에 일탈을 시도하려는 나와, 어떻게든 일상을 보존해 주려는 아내와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이번 모임은, 아내가 나의 이 년 실무경력 마지막 달이라는 것 때문에 경계심을 풀었던 것 같다. 아내의 배려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한 출발은 했지만, 여러 가지 핸디캡이 구비되어 있어 이미 뿌듯하게 끝나고 돌아올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제를 지나 양양을 돌아서 동해까지 가는 육백 리 길, 운전석을 지키는 일부터 고행이었다.
여러 곳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점심식사 만남을 가지면서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상 티샷이 시작되고부터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연거푸 나오는 하품을 삼키고 아픈 허리를 달래며 성의를 보여봤지만, 매 홀을 순조롭게 돌아 나오기 버거웠다. 자연스레 말수가 줄어들어 대화도 뜸해지니 분위기도 무거워져 갔다. 본래 그렸던 그림은 비슷한 위치에 공을 보내놓고 잔디를 밟고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틀어져도 너무 많이 틀어졌다. 골프장 잔디 곳곳을 파 엎고 툭하면 뽈~~~~ 외치며, 구석구석 숨어버린 공을 찾으러 다니는 패턴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같이 라운딩 했던 부부가 분위기를 잘 유도하고 배려해 줘서 그럭저럭 잘 끝낼 수 있었다.
모처럼 다 함께 모인 저녁식사 자리,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몸은 본능을 따랐다. 결국 2차까지 성실하게 참석하고 술과 피로에 절은 몸으로 숙소로 들어왔었다. 다음 날 새벽 티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비몽사몽 간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숨 가쁘게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골프장에선 여지없이 어제의 영상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 등허리로 흘러내리는 땀줄기에 옷이 척척 감기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허리에 파스까지 붙여가며 악전고투했는데 많이 허망했다. 이럴 거라면, 왜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오후 여섯 시까지 근무를 들어가야 해서 점심 식사는 생략하고 동해를 출발했다. 머나먼 여정에 차가 어디서 어떻게 막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밀려드는 노곤함에 운전을 혼자 오래 하기도 힘들었다. 아내와 번갈아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는데, 무모하게 밀어붙였다가 후회막급이었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아내가 바른 생각으로 조언하는 말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아내도 잘 치지도 못하는 골프를 이틀이나 치면서 많이 힘들었는지, "난 이제 다시는 따라오지 않을 거야." 한다. 이틀간의 강행군에 저녁에 근무까지 들어갔던 나는, 꼬박 5일을 극도의 피곤함 속에서 보내야 했다. 지금의 근무지에 있는 한, 나는 다리 짧은 뱁새다. 하루 걸러 24시간 근무하며 강행군을 하는 한, 나는 뱁새 신세임을 인정했어야 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누구도 나와 같은 뱁새는 없었다. 뱁새가 긴 다리로 여유 있게 걷는 황새들을 따라가려 했으니..., 찢어진 가랑이가 얼얼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