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이다. 다 자란 것은 물론, 결혼까지 했다. 또 어디를 가나 나이로 보면 윗사람 축에 들어간다. 여기까지 어른이라는 단어의 의미 중 세 가지 정도를 충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신 있게 어른임을 자부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이순이 지나면서도 줄곧 찝찝함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미더움을 갉아먹고, 항상 가슴 한편이 허전함으로 남아있게 한다.
어른의 의미 중 또 하나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찝찝함의 원인은 이 의미 때문일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말, 결코 단순한 말이 아니다. 삼십 년 넘은 군 생활과 가장으로서 역할에 나름 충실해왔음에도 책임이라는 말 앞에서 자신이 없다. 이것은 단지 남편, 아버지, 아들로서의 역할에 대한 책임이나,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 책임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한 선택과 행동은 물론,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넓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 나이에 걸맞은 열린 귀와 절제된 입에 대해서 모두 책임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어른이 어른 된다는 것은,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충족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끝이 없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계속 되돌아보며 사유하고 배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아가야 한다.
얼마 전,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게시된 글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어느 자영업자가 20대 아르바이트생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낸 내용이었다. 언급된 내용 중에 주목했던 것은, "뭔 소리라도 들으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집에다 말했는지 부모한테 전화 온다."라는 것이었다. 마치 학부모 상담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내 돈 줘가며 사람 쓰면서 모시고 살아야 하나?"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유사한 사례는 많이 있었다.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의 학점에 대하여 부모로부터 항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회사 신입사원의 부모가 상사에게 연락해 자녀의 부서 배치 조정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헬리콥터 부모가 만들어낸 폐해이기는 하지만, 분명 어른이 어른이 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누구나 어른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어른이 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 자란 20대니까 어른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아직 '아이 어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성장 만으로는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다. 우선적으로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율적인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 사회적 위치에서 주어지는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나 같이 세 가지 정도의 어른의 의미를 충족하는 사람들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어른이 어른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요즘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비효율적 요소가 많아졌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주장하느라 상대방의 의견에는 귀를 닫는다. 급기야는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내면서 자기주장 만 난무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쟁으로 아까운 시간을 소진하게 된다. 제2의 도약을 꿈꿔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를 놓치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7,80년대 엄혹했던 시절, 용기 있게 나서서 해야 할 말을 하고 국민에게는 희망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들은 그 말로 인한 불이익과 고초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들을 '원로'라고 불렀다. 세상의 온갖 풍상을 헤치고 살아온 삶의 지혜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은 분명 무게가 달랐다. 지금이 그때보다 형편이 더 좋아진 것은 없는데도, 목소리를 높이는 원로들이 없어졌다. 두 발을 꼿꼿하게 버티고 서서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던 그 원로들이 그리워진다.
원로는 사회의 어른이다. 어른의 또 다른 의미인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이 있는가? 어느 진영이든 귀 기울여 듣고 자중하게 만드는 묵직한 말을 가진 어른 말이다. 사회가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이려면 어른이 많아야 한다. 좀 더 중립적인 관점으로 더 멀리 내다보면서 나라가 나갈 방향을 가리키는 어른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른보다는 꼰대, 어른이 어른이 되려는 사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