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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May 07. 2023

흡연에 대한 비흡연자의 생각

흡연권과 혐연권,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는 권리일까?

흡연권은 ‘별다른 제재 없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혐연권은 ‘비흡연자가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공공장소나 생활공간에서 다른 사람이 흡연하는 것에 대해서 규제를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2004년에 흡연자들이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구분하는 것이 흡연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소원을 내었는데,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주장을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에 해당하지만,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권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하 위계질서가 있는 기본권끼리 충돌하는 경우, 상위기본권 우선의 원칙에 따라 하위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어,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된다는 판례가 정립되었다.

우리나라는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된 후, 공중이용시설의 금연구역 지정 등 흡연권 제한의 지속적인 강화가 이어져 왔다.

     

나의 경우, 장교로 임관 이후 30여 년 이상 흡연자로 있다가 비흡연자로 돌아선 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비흡연자로 돌아선 이유는, 흡연권 제한이 강화되면서 점점 흡연자들을 대하는 인식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고, 담배 피울 때마다 ‘궁상맞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담배하고 이별은 했지만, 위관장교 시절 겉으로 표현 못하는 고통을 달래주는데 담배만 한 것은 없었다.

그런 목적으로만 이용하다 관계를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길고 긴 인연을 이어온 것 때문에 결국 궁상떨 거 다 떨고 돌아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양쪽 모두의 심정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길게 담배 이야기를 이어온 것은, 이제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는 생각에서 한 번쯤은 주제로 삼아볼 필요가 있어서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오피스텔만 하더라도 소음 분쟁과 비슷하게 많이 민원으로 제기되는 것이 담배 냄새로 인한 분쟁이다.

어떤 입주민은 거의 울먹이면서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소음 분쟁의 층간이나 벽간 소음 같은 경우는 대상이 명확하기에 곧바로 가해자에 대한 주의 조치가 가능하다.

그리고 베란다의 담배 냄새의 경우도 냄새의 확산을 고려하거나 직접 목격할 수도 있기에 거의 가해자 특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화장실 담배 냄새의 가해자가 바로 특정되지 않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환풍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전 층이 가해자로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원으로 제기되는 것 외에도, 계단, 주차장 등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공용구역 금연도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근무 중에 담배 냄새로 인한 민원이 들어오면 조치의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형식적인 실내 금연 안내방송을 하고 전동댐퍼 부착을 권유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왜 실내와 공용구역에서의 금연이 지켜지지 않는 걸까?’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나의 개인적 견해이다.

나는 간접흡연을 막기 위한 방향이 혐연권 우선 원칙에 따라 흡연권 제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도 흡연자를 위해서 노천에 야외용 재떨이 하나만 설치되어 있어, 겨울이나 우천 시 흡연에 커다란 불편이 따르게 되어있다.

서울시도 금연구역은 의무이나 흡연구역은 자율로 되어있어 금연 구역에 비해 흡연구역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흡연자들이 실내나 길거리의 골목, 후미진 곳 등으로 흡연장소를 택하게 만들어, 비흡연자들의 혐연권 침해로 돌아가게 되는 악순환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담배값을 파격적으로 인상해서 금연을 유도하는 것도 세수만 증가시키는 결과로 그쳤고 실제 금연인구 감소에는 효과가 미미했다.   

국가나 지자체가 담배를 팔아 세수 확보를 지속하는 한, 흡연자들의 흡연권 만 제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혐연권 보장에 대한 진정한 효과를 거두려면 비흡연자와 흡연자를 보다 더 확실하게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비흡연자와 흡연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길거리에는 시설이 완비된 흡연 부스를 추가로 설치하고, 공용구역도 우수한 성능의 환기시설이 갖춰진 별도 흡연시설이 설치되어 당당하게  흡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했듯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나의 권리는 다른 사람의 권리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라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흡연자들이 비흡연자의 권리가 시작되는 곳에서 자신의 권리가 멈춘다는 것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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