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대략 세 가지 범주의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글쓰기의 동기이기도 한 ‘액티브시니어가 별 건가?’와 관련된 것으로, 새로운 일을 하면서 액티브 시니어가 되어가는 과정 이야기다.
둘째는 60년이 지나버린 인생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셋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해군 생활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가르침을 찾아보고자 한다.
오랜만에 새로운 일을 하며 액티브시니어가 되어가는 과정 이야기로 돌아왔다.
격일제 근무를 하다 보니 주말 중에 하루는 항상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어김없이 돌아가는 근무 패턴에 따라 공휴일에도 근무할 수 있다.
그래도 평일 근무보다는 휴일이나 공휴일 근무가 좋다.
평일은 사무실 업무 분위기도 타이트하고 입주민들의 민원 요구도 많다.
반면에 휴일은 혼자서 근무하니 신경 쓸 것도 없고, 입주민들도 으레 사무실이 쉰다고 생각해서인지 민원 요구도 거의 없다.
그래서 휴일이나 공휴일 근무는 나에게 주어지는 천금 같은 시간으로, 브런치 내 서랍에 저장 글을 채워 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출근했다.
그런데 출근해서 일정표를 확인해 보니 ‘소방설비 법정 점검’이라고 적혀 있어, 교대자에게 물었더니 “점검 대행업체 일정상 평일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늘 한다고 하네” 하였다.
한 치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면서 행복한 고민을 했던 것이 무색해져 버렸다.
일전에 소방 점검을 받아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오늘 일정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스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열 시도되지 않아 점검 대행업체 직원 다섯 명이 들이닥쳤고, 나에게 몇 가지를 한꺼번에 요구하면서 정신없게 만들었다.
이전 점검 때하고 다른 점은 연세가 지긋했던 소방 관리사가 안 보이고 새롭게 점검팀이 편성된 듯 보였다.
내가 근무하는 건물주차장의 스프링클러는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서 배관 내에 물이 차 있지 않은 준비작동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런 방식은 실제 화재가 발생하면 헤드가 개방되면서 배관 내 공기가 밀려 나오고, 뒤이어 물이 방수되는 작동원리다.
나는 매번 순찰 때마다 지하층의 스프링클러 시설을 보면서 정갈하게 설치되었다는 느낌만 받아서인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새로 임무를 수행하게 된 점검팀장은 처음 대면하였지만 말투나 행동에서 의욕이 가득 찬 듯 보였다.
오전에는 지상층 소방설비의 점검을 하였는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오후에 지하 주차장 점검을 하면서 발생하였다.
나는 점검팀과 계속 동행하다 순찰한다고 잠깐 이탈했다가 돌아왔는데, 지하 2층 주차장 바닥에 물난리가 났고 여러 배관 끝부분에서 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 건물주가 주차하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다가와서 누수가 된 이유를 물었다.
아마도 휴일에 소방 점검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다른 이유로 누수되는 것으로 생각한 듯했다.
소방 점검 중 누수라고 설명하여 안심시켜 보내고 관리원에게 물 제거 작업을 시작하라고 연락했다.
관리원이 보더니 “휴일에 이게 뭐 하는 거냐?”하고 점검팀장을 타박하고 난리다.
결국 바닥에 물을 제거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고 휴일의 여유를 빼앗기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점검을 마쳐야 하니 나는 점검팀과 같이 지하 5층까지 점검을 진행했다.
점검팀장과 2층 주차장에 다시 올라와 확인해 보니 바닥의 물은 거의 제거되어 있었고, 배관에서 흐르는 물은 곧 멈출 것이라고 해서 점검팀을 내보냈다.
점검팀을 보내고 잠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지하 2층에 있는 상가에서 사람이 황급히 달려와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니 조치해 달라고 한다.
별수 없이 복귀 중인 점검팀장에게 연락해서 관련 사실을 알리니 다시 오겠다고 했다.
점검팀장 도착 후 상가에 가보니 사무실 천정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었으며, 책상 위의 서류는 물에 젖어있고 바닥에 물이 흥건한 상태였다.
흥분해서 소리치는 상가 직원을 점검팀장과 같이 달래서 원인 식별을 시도했는데, 현 상태에서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
내일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정확한 원인을 식별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일단 마무리하고 철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멈출 것이라고 하던 배관에서 물이 계속 새어 나와서 그동안 청소한 것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점검팀장은 별수 없이 같이 온 직원 한 명과 배관 내에 있는 잔수를 모두 빼내느라 밤 아홉 시까지 고생하다 복귀했다.
다음날 모든 원인이 밝혀졌는데, 스프링클러 배관의 잘못된 시공으로 잔수가 남아있어 발생된 일이었고, 상가는 에어컨 배수 배관을 임의로 잘못 연결해 놓아 역류가 발생된 것이었다.
새로 임무를 수행한 점검팀장의 의욕에 찬 점검이 없었더라면 또 그냥 묻히고 지나갈 일이었다.
비록 당일 밤늦게까지 고생은 했지만, 이제까지 모르고 있던 중요한 결함을 찾아내게 만든 공적은 인정받아야 마땅했다.
또 하나 밝혀진 것은 소방 관리사 자격에 경력이 풍부한 전임 점검팀장이 오랫동안 점검을 해왔지만, 이런 결함 사항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래서 정치권에서도 국면전환을 위해 ‘인적 쇄신’을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고 있고, 어떤 조직이든 발전을 논하려면 일성으로 ‘인적 쇄신’을 앞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휴일 진득하게 앉아서 글쓰기에 빠질 것이라는 부푼 기대가 무참히 깨져 버리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게 된 것은 아쉽게 되었지만, 내가 속한 조직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 수 깨우치게 된 것도 보람이라면 보람일 것이다.
"쉬운 길을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