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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May 31. 2023

누군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언젠가 여름 납량특집으로 TV에서 방송되었던 영화제목이다.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해되지 않는 꼬임 때문에 그리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던 영화였다.

다만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이 주는 섬뜩함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난데없이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 ‘섬뜩함’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공간에서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면 수많은 CCTV 화면이 보인다.

평상시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쳐다볼 일이 없다가도 문제만 생기면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 전후 관계를 확인할 목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양심에 어긋난 행동의 주인공을 알아내는 데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쓰레기를 일반봉투에 담아 지하 4층 비상계단에 살짝 놓고 간 사람,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 벽에 황당한 낙서를 한 사람, 운전 부주의로 주차장 벽을 파손해 놓고 말이 없는 사람, 대형 폐기물 신고를 하고 처리해야 할 가구와 매트리스를 그냥 슬쩍 내어놓은 사람......

CCTV는 이 모든 사람이 양심을 어긴 행동에 대해 민구스러움과 아울러 ‘섬뜩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지난날 나만 알 것처럼 저지른 일들이 진정 나만 아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느 일요일, CCTV가 다시 한번 전공 세울 기회가 찾아왔다.

사건의 발단은 공용구역에 있는 공동현관 출입 비밀번호를 바꾼 데서 시작되었다. 

두 달 전부터 공동현관 출입 비밀번호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져, 두 달 후에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왜냐하면 입주 초창기부터 쓰고 있었던 공동현관 출입 비밀번호가 외부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노출되어 방범 출입문으로서 역할이 무색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출입구 쪽에 있는 화장실 사용 인원이 너무 많게 되니 고장이 잦아, 정작 입주민이 사용할 때 불편을 초래하기 일쑤였다.

나는 공고문에 명시된 열한 시에 맞추어 열네 군데나 있는 공동현관의 출입 비밀번호를 정해진 번호로 신속하게 바꾸었다.

이후부터 일대 혼란이 시작되었다.

두 달 전부터 안내문으로 공고를 하고 개별 문자도 보내고 했지만, 관심 가지고 개별 비밀번호를 설정하지 않은 세대가 의외로 많았다.

그들은 기존의 번호로만 출입하고 있던 터라, 건물 내로 들어올 수가 없었고 경비 호출 버튼만 눌러대기 시작했다.

경비 호출 버튼을 누르게 되면 옆방의 전화기 벨소리가 울리게 되는데, 열네 군데의 공동현관에서 경비 호출 버튼을 돌아가면서 눌러대니 그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책상에 앉아 근무할 때야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자정 이후 취침 시간이 문제였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 소리에 잠을 설치다 새벽 두 시 반쯤 겨우 잠이 들었다.

예전과 같이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세면하고 돌아오는데, 길목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 출입구의 유리가 깨져있는 것을 보았다.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와 CCTV를 확인하려는데 언제쯤인지 특정할 수 없어 막막했다.

순간적으로 새벽 두 시 반까지 잠들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 시간 이후로 빠르게 돌려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세 시 사십 분경, 주인공이 포착되었다.

새벽에 거나하게 취한 채 들어오려는데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눌러도 문이 열릴 생각을 안 하고 경비 호출 번호를 눌러도 응답도 없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CCTV 화면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 덕에 바깥 출입문은 열었는데, 엘리베이터실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어 화가 날 대로 난 주인공을 비추고 있었다.

결국 주인공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도 없는 부동산 사무실의 유리로 된 출입문을 흔들고 걷어차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침 유리에 아스테이지를 붙여놓아 깨어진 유리 조각 때문에 다치는 일이 없었기 다행이었다.


다음날, 출입문 원상복구를 위해 업체에서 제시한 견적가는 팔십만 원이었다.

어제의 주인공은 화를 이기지 못한 발길질 두어 번에 팔십만 원을 물어주게 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그 주인공은 다른 걸 깬 일로 인해서 이미 사십만 원을 물어낸 이력이 있던 인물이었다.

윗사람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물증을 제시하고 변상을 요구하는 자리에서도 처음에는 흥분하면서 자신 잘못에 대해서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주인공을 특정할 수 있게 한 CCTV의 활약이 있었기에 순순히 변상의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공간에서의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벌어진 사건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CCTV는 법률상 범죄예방, 시설안전, 화재예방, 사고예방, 교통단속 및 정보수집의 목적으로만 설치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법률이 시행되는 것처럼, 필요에 의한 요구 증대로 설치 구역의 점차적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작년 국감자료에 이미 30~40대 직장인이 출근 시부터 퇴근 시까지 하루 평균 98건이 CCTV에 노출된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지금은 훨씬 더 많이 노출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공중화장실, 탈의실, 대중목욕탕 등을 제외하고 어느 곳에서든 CCTV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는 움직이는 동선상의 전 CCTV 공백 구역을 일일이 확인하여 회피하지 않는 이상, 어디를 가나 24시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몇몇의 사람들이 무심결이거나 의도적 행동이 CCTV에 의해 식별되어 계면쩍음과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를 보았다.

나는 이중 무심결에 하는 행동은 습관과 관련이 있고, 의도적인 행동은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습성에 의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특히, 발길질 두어 번에 팔십만 원을 지출하게 된 사례는 결국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미성숙된 인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CCTV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부지불식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좋은 습관화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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