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절에 관계없이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정수기 물도 따뜻하게 뽑아 먹고, 아메리카노도 따뜻한 것만 시켜 먹는다. 한여름에 '아아'를 시키지 않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그래도 변함없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커피 주문하면서 내가 없었다고 당연히 '아아'로 가져왔길래 조금 먹다가 버렸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머리는 차갑게, 배는 따뜻하게' 해야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으면서 큰 것이 연유가 된 것 같다. '머리는 차갑게'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배는 따뜻하게'라는 말은 정말 성실하게 지켜왔다. 처음에는 무작정이었지만 그 효능을 알고 나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키려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효능 중에 스트레스 감소는 물론, 소화를 촉진시키고 혈액 순환을 개선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나는 사람도 그가 누구든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따뜻한 사람 마다할 이 없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 기분까지 좋아진다. 인터넷 발달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더 지혜롭게 소통하고 많이 이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증오와 차별이 횡행하는 냉소적인 사회를 만들어 따뜻한 사람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오가며 따뜻한 사람을 볼 수 있기에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침 일곱 시 마을버스에 오를 때 "어서 오십시오." 하며 밝은 얼굴로 쳐다보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백미러로 보고 있는 기사님이 있다. 나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고 타고 내리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다정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로 하고 있었다. 팔 개월여 이틀에 한 번씩 타고 다니면서 딱 한 분이 그런다. 그런 날은 적금 찾은 날처럼 기분까지 푸근해져, 사무실 다른 사람에게 웃음 머금은 얼굴로 인사하게 된다. 어림잡아 사십 대 초반 같은데, 언제 그렇게 인생의 지혜를 쌓았는지 그 내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아내는 혼자 사시는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 자신이 맡고 있는 노인의 집에 와서 봉사하는 분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연세도 지긋한 분이 문 보수, 방충망 설치, 전기 콘센트 수리...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고 노인을 대하는 태도와 표정, 그리고 요구하는 것을 끝까지 듣고 그렇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또한 복지관에서 계획된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사전에 계획된 것만 하면 되는데, 부가적으로 요구하는 수리도 기꺼이 늦은 시간까지도 다 해주고야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직접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말하려고 보니 이것 말고도 생각나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걸레질, 빗자루질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순찰돌 때 지저분한 곳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젊은 할머니 미화여사!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우리 애들 때문에 시끄럽지요." 하면서 웃음 지으며 인사하는 위층 애들 엄마! 이 모든 사람들이 어둡고 추운 세상을 밝고 따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따뜻하다는 것의 주체는 마음이다. 그래서 따뜻한 사람은 마음의 온도가 따뜻하다는 것이다. 마음을 담은 가슴은 신경선을 통해 얼굴과 입, 온몸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의 온도가 따뜻한 사람은 표정으로, 말투로, 몸짓으로 따뜻함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정을 주고, 도움을 주려하고, 베풀고, 포용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끼리끼리만 소통하면서 증오와 차별을 일삼고, 나의 이익과 무관하면 철저하게 냉소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 정말 싫다. 지혜롭게 자신의 마음 온도를 조절할 줄 알아서 스스로 온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과연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되돌아보고 이제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이 답이 없어도 웃는 얼굴로 인사하자, 입주민이 어떤 요구사항을 말해도 친절하게 다정한 목소리로 응대하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상대편의 입장을 배려하자......
나도 마음의 온도가 따뜻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 온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속에서 따뜻함을 주고받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