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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Apr 03. 2023

남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일

내가 오피스텔에 근무한 지 한 달여 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순찰 중에 한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 미화여사와 마주쳤다.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예요?”라고 묻는다.

15층부터 순찰 돌고 내려오면서 주워온 쓰레기라고 하니, “그래서 쓰레기가 별로 없었구나.” 한다.

두 명의 미화여사들이 담당을 나누어 15층까지 청소를 하는데, 요즘 들어 쓰레기가 많이 안 보여서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그냥 두어도 어차피 미화여사들이 치울 것인데 내가 굳이 쓰레기를 주워오는 것은 당장 다른 입주민들 눈에 띄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냥 순수한 생각으로 시작한 쓰레기 줍기가 미화여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나는 건물 지상층에서 시작된 쓰레기 줍기를 지하주차장까지 확대했다.

지하주차장은 지상층보다 더 가관이었다.

주차공간에는 버리고 간 테이크아웃컵이 나뒹굴고 마스크를 꺼내 쓰고 버린 포장지, 심지어는 봉지에 담은 쓰레기까지 두고 가는 등 외부에서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볼까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관리원 한 명이 주기적으로 청소한다고는 하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청소해야 할 부분이 많다 보니 모든 지하주차장이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한번 근무할 때 네 번씩 순찰을 하는데, 순찰 시마다 쓰레기를 눈에 띄는 족족 주워서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치우기 시작했던 것은 세탁기 실이다.

세탁기 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바퀴 달린 빨래바구니가 설치되어 있는데, 순찰 때 보면 정말 엉망이었다.

빨래가 담긴 바구니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건조기에서 나온 먼지 덩어리에 먹다 버린 음료수 캔까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순찰 때마다 바닥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물론, 빨래바구니를 항상 일정하게 정렬시켜 놓았다.      


내가 굳이 쓰레기 줍고 청소한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는 이유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의 실효성에 대해서 말하기 위함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미국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공동발표한 범죄이론이다.

이론의 내용은 ‘깨진 유리창과 같은 사소한 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가 지하철 낙서를 근절하니 살인이나 폭행 같은 강력범죄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법칙을 앞에 나열한 쓰레기 줍고 청소한 이야기에 적용해 본다면, ‘주변 환경이 더러우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부추겨 더 더럽게 된다.’라는 말이 되고, 반대로 ‘주변 환경이 깨끗하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쉽게 드러날 것을 우려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시작한 지 네 달여 만에 ‘깨진 유리창 법칙’의 실효성을 정확히 목도하고 있다.

지상층을 순찰하고 와도 손에 들려진 쓰레기가 거의 없어졌고, 지하주차장의 달라진 모습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주차한 차의 뒤편까지 살피고 다니는데도 별반 쓰레기를 찾아내는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세탁기 실은 바퀴 달린 빨래바구니가 누가 일부러 맞추어 놓은 것처럼 거의 정위치에 가 있고, 바닥도 가끔 빨래 건조기에서 딸려 나온 먼지 덩어리 몇 개만 주우면 될 정도로 변했다.

나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일이지만, 입주민이 계속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던 일이 ‘도덕적 해이’까지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깨진 유리창 법칙’을 들먹거리기 이전에, 개인의 도덕적 관념이라는 점에서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혼자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어서 더럽히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도덕적 사고에서 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의 우승으로 끝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MVP에 등극한 오타니 선수는 야구에 대한 실력 외에도 훌륭한 인성에 대한 평가가 돋보인다.

정말 특이했던 것은 어디서나 쓰레기를 줍고 다니는 영상이었다.

그것은 오타니가 고 1 때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 상 세부 실천계획에 ‘쓰레기 줍기’가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습관과도 같았다.

본인 말로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것”이라고 했지만, 기본적인 인격부터 갖추기 시작한 것이 좋은 인성으로 발전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 만다라트 계획표 : 연꽃 모양의 계획표를 말하고, 정중앙에 최종목표를 적은 뒤 8개 방향으로 조금씩 확장하면서 세부 지침을 상세하게 적어나가는 방식의 계획표     


인성은 사람의 성품이고,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다.

나는 이런 말들을 논하려면 우선적으로 ‘도덕적 정직성과 양심에 따른 행동’이 갖추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행동이 입주민의 ‘도덕적 해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이상, 쓰레기 줍기는 계속할 예정이다.

다만 더 진척되기를 바라는 것은, 강요된 도덕적 행동이 양심에 의한 도덕적 행동으로 전환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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