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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Aug 23. 2023

누나 몸, 내 몸

너도 특별하단다.

"아빠~~ 하성이가아~ 하이미가 싫다는 걸 자꼬 해~~"


화장실에서 하이미의 sos요청이 들려온다. 하성이가 샤워를 하고 나온 누나에게 장난을 친 모양이다.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성이가 누나 엉덩이를 보려고 막 했나 보다. 원래 동생은, 특히 남자 동생은 누나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법이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아들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피식 웃다가 다소 심각한 하이미 얼굴을 보고는 적절한 중재에 나서본다.


"하성아. 우리 아들! 누나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거야~!"


두 아이는 이제 제법 커서 샤워도 따로 하고, 엄마는 특별히 하이미에게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들을 자주 일러주곤 한다. 엄마의 특별한 보살핌은 더 있는데 아침에 직접 하이미 엉덩이를 닦아주거나, 샤워할 때 특별한 비누를 사용해서 씻겨주고, 꼭 속옷과 속바지를 챙겨서 입히는 것들이다. 아빠와 엄마가 이렇듯 하이미 몸을 소중히 해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 뒤, 주일날 아침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하이미의 SoS가 또 들려왔다.


"아빠~~하성이가~~또 그래~~!"


하이미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자기 몸을 소중히 하기 위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하성이를 번쩍 안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아내는 나에게 슬쩍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아빠가 하성이한테 남자 대 남자로 잘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제대로."


"응. 알겠어!"


남자 대 남자로 알려줘야 한다는 말에, 괜한 남자부심(?)으로 자신 있게 대답은 했지만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하성이에게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말'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단호하게 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안 된다는 말 대신 이렇게도 말해봤다.


"오! 하성아! 하성이 힘이 센 거 알지? 그러니까 그 힘으로 누나 몸을 소중히 해주는 거야!"


하성이가 가진 에너지를 더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도와주었던 이 말도, 하성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했다. 누나가 자기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누나 몸을 소중히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하성이 시선에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엄마, 아빠가 누나 몸을 특별히 더 신경 쓰는 것 같고, 씻겨주기 위한 비누도 주문해 주고, 씻겨줄 때는 아빠가 아닌 꼭 엄마의 손길로만 해주는 그 일들을 바라볼 때 하성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기는 가지지 못한 특별한 걸 누나는 가지고 있다는 마음,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자기도 누나처럼 똑같이 몸에 지니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자꾸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더구나 자기가 장난을 칠 때면 엄마, 아빠가 더 신경을 쓰고 타이르는 모습을 보면서 누나가 가진 게 더 특별해 보이진 않았을까?

아들! 너도 특별하단다

하성이도 누나만큼이나 특별한 걸 몸에 지니고 있다고 알려주기로 했다.


"하성아! 하성이 몸에 얼마나 특별한 게 있는 줄 알아? 누나에겐 없는, 하성이만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는 하성이 몸을 씻겨줄 특별한 비누도 주문해 주겠다고 했다.

하성이의 시선이 자연스레 누나 몸에서 자기 몸으로 옮겨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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