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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Jan 27. 2024

갚는 마음

친구 아버지 장례식

이삭이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께서 이제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경찰제복을 입고 계셨던 아버지는 파란색 공장장 옷으로 갈아입으셨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다. 순수했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공장은, 강아지 간식을 만들어내던 사업은 금세 기울어졌다.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실 때도, 쫓겨나듯 사업을 마무리하실 때도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 경험해 보는 현실들에 우리 가족은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 


이삭이 아버지도 경찰이셨다. 이삭이 어머니는 나에겐 교회 선생님이기도 했다. 어느 주일날, 교회를 마치고 이삭이네 집에 놀러 갔다. 마침 아저씨도 계셨다. 재밌게 놀다 가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선한 미소도 함께. 그러던 어느 날 이삭이 아버지를 뵈러 병원으로 갔다. 아저씨는 누워계셨고, 알 수 없는 장비와 선들이 아저씨를 감싸고 있었다. 도로의 교통통제를 나가셨던 아저씨는 그날 밤,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셨다. 이삭이는 애써 덤덤해 보였다. 아저씨는 병실에서 그리고 내가 놀러 갔던 그 집에서 계속 누워계셨다. 선생님은 가장이 되셨고, 현실과의 가열찬 싸움을 시작하셨다. 


엄마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삭이 어머니였다. 선생님은 엄마와 어느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약속장소에 가셨다. 덤덤한 몇 마디 말들이 오가고 나서 선생님은 엄마에게 흰 봉투를 건네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제법 두툼해 보였다. 아저씨가 사경을 헤맨 후에 가족을 건사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우리 가족의 소식을 들으셨나 보다. 선생님의 마음은 남편과 이삭이를 챙기는 것과 더불어 우리 가족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만큼이나 컸다. 그렇게 내 마음 한편에 빚이 생겼다. 


스무 살 때였다. 이삭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소리도 들렸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확인을 해봤는데, 유방암이더라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마음을 나누고 기도로 함께 하고 싶으시다며 전화를 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척이나 적었지만 휴대전화를 붙들고 내 마음을 내어드렸다. 오랜 기간 동안 누워계셨던 아저씨를 돌보느라 선생님이 많이 지치셨었나 보다.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건네드릴 수 있는 위로의 말, 위로의 단어들이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바랐다. 선생님께 책을 보내드렸다. 책의 무게만큼만 마음의 빚이 덜어진 것 같았다. 


어느덧 이삭이도 나도 삼십 대 중반이 되었을 때, 이삭이는 또 하나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가고 있어요. 어서 가서 제가 안아드릴게요.'


선생님을 보자마자 안아드렸다. 이번에도 선생님을 향해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드렸다. 그 말들은 스무 살 그때보다 조금은 더 무거워져 있었다. 그만큼 마음의 빚은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삭이가 아버지께서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번에도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삭이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났다. 오랫동안 누워계셨던 아버지가 이제는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친구는 오히려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걱정이라고 했다. 아빠가 없는 넓은 집이 적막할 것 같다고. 아저씨를 보내드리러 화장터를 지나 현충원까지 동행했다. 순직하신 아저씨의 유해는 가지런히 정리된 현충원 한 곳에 모셔졌다.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의 공기도, 선생님과 이삭이를 향한 내 마음의 빚도 한결 가벼워졌다. 선생님이 건넨 두툼했던 봉투, 그 안에 담긴 선생님의 마음은 더욱 더 여전히 선명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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