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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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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Aug 11. 2024

이름도 모르는

사람서랍 - ①

서랍 한켠에 언젠가 건네받았던 쪽지, 오래된 필기구, 쓰던 노트 등을 모아둔다. 더는 필요하지 않아도 버리지는 않는다. 무심코 서랍을 열었을 때 모아둔 것들에 손이 가 닿으면, 그것과 얽힌 추억이 생각난다. 쪽지는 서서히 색이 바래고, 오랜 문구는 세련된 필기구로 대신하게 되며, 노트도 더는 채워지지 않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하나둘 꺼내 서랍에 모은다.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가 없는 순간, 언젠가 내 기억이 추억과 맞닿으면 그와 얽힌 소중한 순가들이 떠오를 것이기에.


대학생 시절, 장학금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성적우수장학금은 아니고, 추천장학금이랄까. 대학교 소재지에 사는 어느 분이 자신의 사비로 몇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었고, 운 좋게 나도 그 명단에 합류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액수는 약 70만원이었던 것 같다. 당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그 장학금은 내게 여러 의미가 있었다. 가끔 매점에서 간식을 사먹을 수 있게 해준 용돈이자, 구김살 없는 대학생활을 하게 해준 격려였으며 심지어는 우리 집이 이사 갈 때 사용한 몫돈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은 당시 살던 집 계약이 만료되어 다른 집을 알아봐야 했다. 마침 전세금으로 딱 갈만한 집이 있었는데 계약금을 치룰 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계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 어쩜 이리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을까. 두 분은 그날 부동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계약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심하던 와중이었고, 그 날 나는 장학금을 수령했던 것이다. 고마운 돈. 


교내에서 장학금 교부를 담당하던 관리인에게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물은 적이 있었다. 어떤 스토리가 그분이 장학금을 나누도록 이끌었는 지 궁금했다. 관리인은 이렇게 답했다.  


"나도 얼굴 한번 본적이 없어요.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구요. 다만 이메일 주소만 알고 있어요."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자기가 건네는 선행에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우다니. 나는 건네받은 이메일 주소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냈다. 그분은 너무나도 담백한 답장을 보내왔다. 


"네. 감사합니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만의 여백이 가득했다. 단 몇마디. 메일 속 빈 공간이 많았지만 하나도 가볍지 않았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에서, 그가 가졌던 생각을 되짚었다. 이렇게 담담하게 메일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스스로 생각했을까. 그래야 스스로 가졌던 첫 마음, 자신의 것을 나누고자 했던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가 가진 소유물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자기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혹 그는 이전에 자기와 닮은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았을 수도 있겠다. 그가 받았던 이름모를 도움, 따뜻한 마음, 담백한 인사가 너무도 선명하게 자리했던 것이다. 마음에 생겨난 감사한 마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눌만큼이나 컸을 수도. 그가 전해준 담백함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 이후로, 그 '이름 모를 장학금'은 몇 번 더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가정이 생기고 내가 가진 소유물이 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받았던 장학금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가 남긴 여백으로 더더욱이. 지금도 여전히 흔적없는 장학금은 계속되고 있을까. 


닿을 수 없지만, 그에게 알리고 싶다.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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