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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Jan 05. 2022

책이 나왔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정녕 제 아이란 말입니까.

책을 냈다. 잡지사 에디터로 살아가는 3년 차에 드디어! 이십 대 마무리를 이렇게 완성해 버리니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도 조금은 덜 억울해졌다. 그래도 뭔가 이뤄놓고 이십 대 문을 닫는 느낌이랄까.


에디터 생활을 시작하면서 독립 책방에 관심을 가졌다. 잡지사이면서 출판사이기도 한 회사인지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약을 사려면 약사에게 책을 사려면 책방에게! 책방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건 순전히 핑계였다. 당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할 테니 부디 우리 책을 기쁘게 입고해주십사 하는 그런 마음. 그게 조금 꾸준히 하다 보니 원고가 꽤 쌓였다. 


모든 건 핑계가 필요하다. 이건 내가 소심한 탓이다. 당당하게 '내 원고가 이렇게 좋으니 어서 책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외칠 수도 있지만 그보단 '제가 이번에 좋은 사업 하나 따왔는데 마침 제 원고도 좀 쌓여서 이 기회에 책 출판도 같이 하면 어떨까요?'라고 하는 식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라는 곳이 있다. 중소 출판사에겐 참 고마운 곳. 그곳에서 지역출판사 지원 사업이 매년 열린다. 많은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것은 아니고 딱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쇄비 정도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먹고 삽니다. 지원 사업을 받기 위한 사업 계획서를 쓸 때 책 세 권을 만들겠다고 했다. 출판하기로 했던 시인의 원고가 있었고, 프리랜서 기자의 원고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내 책도 함께 만들겠다는 나름의 야망을 담아.


출판사 편집자로서 사업 계획서를 넣었고, 사업을 따낸 후엔 작가로서 글을 썼고, 글을 다 모은 후엔 다시 출판사 편집자로 글 교정교열과 편집을 보았다. 이쯤 되니 회사 속 홀로 1인 출판사를 차린 기분이다. 나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랄까. 내 마음대로 내 책을 편집하고 만들고 기획할 수 있다는 건 그 나름의 자유로움이 있다.


대전 8개 책방의 인터뷰를 담았고 책방을 취재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을 에세이로 담았다. 책 제목은 <일곱 가지 핑계>다. 이십 대는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고, 취직해서 돈을 벌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어른은 어른의 언어를 배워가며 되는 것 같다. 가끔은 더 유치하고 가끔은 이해 안 되는 일이지만. 핑계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럴싸한 핑계를 자꾸 만들어내는 것 같다. 친구와 밥 먹기 위한 핑계, 선물을 전하기 위한 핑계,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위한 핑계 등. 책방에 가기 위해서도 핑계가 필요했다. 인터뷰의 설렘을 들키기 않기 위한 핑계, 인터뷰 시간에 늦은 핑계, 말을 건네기 위한 핑계 등. 참 핑계도 가지가지다. 


책을 내고 나니 오래된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온다. 작가라는 말로 불린다. 하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런 아무래도 이 모든 게 핑계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 원고 쓰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작가 소개란에 나를 뭐라 설명할지 어려웠다. 나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이십 대 마지막에 나는 뭐였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쓴 말은 쓰고 나니 시시한 말이 되었다.


"대전 《월간 토마토》 잡지 에디터. 


운이 좋은 삶을 살고 있다. 


글을 쓰며 내 글이 얼마나 진짜에 가까웠는지 매번 저울질 중이다."

그래도 찾아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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