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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May 11. 2021

오리스테이크와 책의 상관관계

진짜를 먹고 싶다. 진짜를 먹으면 나도 진짜가 될까?

어른은 어떻게 되는 지 모르겠고

글은 어떻게 쓰는 지 모르겠는데

편집자는 또 어떻게 된 걸까?




"편집자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지."

김운하 작가님이 말했다. 이번 책을 만들기 까지 작가님을 도와주신 기획자셨다. 편집장님도 옆에서 그 말을 거든다.

"예전에 직원 중 한 명이 편집자가 되고 싶어해서 서울로 일을 잡아 준 적이 있죠. 편집 학교도 다니고 해보라 했는데 나중에 말하더라고요. 편집자는 못 하겠다고. 책을 좋아하는 거랑 편집자의 일은 또 다른 거란 걸 깨달은 거죠."

작가님과 편집장님은 재밌다는 듯 웃었지만 나는 그냥 앞에 놓인 피자만 우적우적 씹었다. 우우. 나는 편집자 생각이 없었는데요....


어쩌다 보니 편집자로 이름 적힌 책이 나왔다. 그 전에도 꽤 몇 권 만들긴 했지만 이번 책은 느낌이 다르다. 책인쇄를 마치고 기획자, 작가, 편집장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승미 작가님은 좋은 책 만들어줘서 고맙다면서 기분 좋게 밥을 사셨고 나는 아직도 고맙다는 칭찬이 얼떨떨했다. 아휴. 제가 한 건 별거 없습니다. 하하.


책 교정을 보는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디자이너님이랑 밤새도록 파일을 주고 받았다. 교정보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 낮에는 원고 취재하고 밤에는 교정 본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니 책이 나왔다. 나 혼자 책출판 기념으로 통오리를 샀다. 18,000원. 한 달 전에는 10,000원 정도였는데 가격이 많이 올랐다. 교정 보는 동안 오리고기기 값이 치솟은 평행세계로 이동한 걸까...?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가슴살만 필요한데 인터넷 구매가 아니면 오리 가슴살만 구할 방법이 없다. 온라인 주문은 기다릴 수 없다. 난 내일은 다시 바빠질텐데... 나는 오늘 기분을 내고 싶어 통오리 하나 무겁게 들고 집에 왔다. 도마 위에 오리를 놓고 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고기가 아니라 방금 살던 오리가 누운 느낌이다. 그 모습이 무서원 얼른 유튜브를 보며 통오리 분리하는 방법을 익혔다.

내 요리 선생님은 유튜브다. 요즘 대부분 그렇게 요리를 배우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끔 생각해보면 유튜브로 요리를 배운다는게 이상하게 느껴지긴 한다. 영상에서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나는 그 맛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오리 스테이크도 열심히 영상을 보며 배웠지만 이게 과연 레스토랑에서 파는 그 맛과 얼마나 닮고 얼마나 다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눈치껏 따라한다.


오리 가슴살을 통오리서 분리하고 껍질부터 팬에 약불로 익힌다. 껍질이 노랗게 될 때까지 구우라고 김밀란 선생님, 승우 아빠 선생님 그 외에 기타 등등 내가 구독하진 않았지만 일일 선생님으로 함께한 수많은 유튜버의 가르침을 되새김질 하며 오리 가슴살을 구웠다. 그리고 오리 껍질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튀기듯 구웠다.


이승미 작가님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분이었다. 속을 커피로 채우면서 밤새서 책을 읽기도 하고 많이 읽을 땐 한 달에 20권 넘게 읽기도 했다. 그녀의 직업은 과학 연구원. 직장을 다니면서 책 한 권 읽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작가님은 20권을 넘게 읽었다니 정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버거워하는 편집자가 한 달에 20권 읽는 작가의 책을 편집했다. 나는 진짜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을 만들면서 수없이 작가님 글을 읽으면서 나도 조금은 진짜 편집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님과 연락하고 편집하고 디자이너님과 이 문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조금은 나도 진짜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만든 오리 스테이크를 먹으며 내가 편집한 책을 읽는다. 스테이크는 맛있다. 아니 사실 고기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책도 재밌다. 글이 재밌으면 어떻게 책을 만들어도 재밌다. 어쩌면 중요한 건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 커버를 예쁘게 바꾸고, 어떻게든 눈에 잘 띄려고 포장지를 바꾸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고기는 언제나 먹어도 옳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다. 그래, 진짜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진짜를 먹고 진짜를 읽자고 생각했다. 오리 스테이크를 먹으며 편집자로서 삶에 용기를 조금 얻었다. 내일이면 사라질 용기일지도 모르지만 이 용기도 내 뇌 어딘가 세포에 저장되지 않을까?




그렇게 이승미 작가님의 책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가 나왔다.

나도 이제라도 편집자가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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