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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짧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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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Mar 20. 2021

8. 사람이온다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 이병률, 사람이 온다

"낚시 찌는 최대한 멀리 던지는 거야."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했지만 언제나 갯바위 낚시였다.

"이걸 루어낚시라고 하지."

아버지는 물고기 모형을 낚싯줄 끝에 매달에 멀리 던지고 다시 끌어당기기를 반복했다. 모형 물고리는 멀리 날아갔다가 수면 위에서 퍼덕이며 아버지에게 끌려왔다. 멀리 던져지고 다시 끌려오고, 아무리 멀리 떠나도 다시 밀려오고, 밀물과 썰물. 결국은 멀어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낚시찌.

"가끔 이러다 대물을 잡으면 하루 피로가 싹 날아간다니까."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했다. 하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지 않던 아버지.

"이게 훨씬 싸잖아."

아버지는 나를 항상 멀리 던졌고, 나는 도로 밀려왔다. 아버지는 횟감이 잡힐 때까지 나를 몇 번이고 던질 것이다.




"현아. 잘 지내고 있냐."

집에 돌아와 짐을 다 풀고 핸드폰을 뒤적이다 결국은 현에게 연락을 했다.

"오. 민수형! 드디어 다시 돌아온 거야?"

"그래. 상황도 상황이고. 돌아올 때가 되었지."

"그래서 지금은 어디야? 내가 형 진짜 좋아하는 거 알죠?"

"아버지 집. 그래. 조만간 한번 보자고."

오랜만에 연락한 현은 예전과 똑같다. 한결같은 사람. 괜히 부럽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썅.


"이제 뭘 할 거냐."

아버지는 생선 구이 가시를 바르고 있다. 본인이 잡은 생선이다.

"좀 생각 정리를 하려고요."

"아니지."

아버지는 포크를 내려놓는다. 아. 또 시작이네.

"아지니. 생각 정리는 이미 되었어야지.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냐. 그 먼 곳을 보내도 변한 게 없구나."


내 접시에 놓인 가자미 구이는 알이 가득 차 있다. 알을 걷어 내니 먹을 살은 전체 크기 반도 안 된다. 나는 남은 잔가시를 발라내며 시선을 떨군다. 이건 일종의 약속이다. 개는 꼬리를 내리고, 나는 시선을 떨구고. 아버지도 더 별 말이 없다. 나는 가자미 알을 좋아하지 않는다. 먹을 게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왔다. 방을 비운 동안 집안 여러 잡다한 것들이 내 방에 쌓였다. 썰물이 빠지고 나면 남은 것들은 뻘에 몸을 숨긴다. 나도 집안 잡기류 속에 몸을 숨긴다. 


유학은 실패로 끝났다.

학위 취득도 못했다.

시간은 5년이 지났지만 나는 제자리다.

휘적휘적. 나는 입에 바늘이 박힌 가짜 물고기.

멀리 던져도 아무것도 잡아 오지 못하니 나는 그냥 가짜 물고기.

나는 저 멀리 던져도 그날 털레털레 온다.

"아. 씨. 분명하고 싶었던 건 있었는데."

아. 모르겠다. 




"아빠. 왜 이 낡은 미끼는 안 버리고 가지고 있어요?"

"그건 추억이지."

아버지는 낚시통을 닫았다. 아버지 낚시통엔 웃기게 생긴 노란 물고기 모형이 하나 있다. 맨 처음 낚시를 시작했을 때 선물로 받은 찌라고 했다.


"그래. 내게 남은 건 추억이지."

뭐 그리 잘난 추억도 없지만 나에게 한국의 기억은 5년 전에 머물러 있다. 모른 척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과거 기억들을 뒤집어엎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기억들이 남았다. 현. 가현. 규빈. 그들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과거 기억에 머물러 있다. 그게 내게 남은 추억이다. 쓰고 나니 참 별거 없는 추억이다. 뭐 삶이 다 그렇긴 하지만. 조만간 녀석들을 만나 봐야 겠다. 그곳엔 내가 아직 비빌대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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