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구 Jan 09. 2023

술잔에 비치는 조명이 아름답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술 한 잔의 여유란, 술 한 잔 가격에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지와 관련이 깊다.

여유란건 내 소비 능력과 얼마나 태연하게 즐길 수 있는지 사이 외줄타기다.

그리고 난 아직 1만 7천 원에 살짝 입술을 물어 뜯었다.



좋아하는 바로 친구를 초대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마치 내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듯한 뿌듯함이 있다. 위스키와 칵테일을 좋아한다. 경제적으로 위스키를 선택하는 편이긴 하다. 압생트는 한 잔에 1만 원이지만 칵테일은 가장 싼 게 1만 6천 원부터니까.... 하지만 가끔, 정말 기분을 내고 싶을 땐 칵테일을 시킨다.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알코올이 얼마나 비싸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호로록 마신다. 


연말이었다. 그리고 연초가 되는 그 사이에 있었다. 아는 형은 급하게 타지로 발령을 받았고, 우린 이렇게 짧으면서도 긴 인연을 끝내게 되었다. 물론 언제든 대전에 놀러오면, 또 보러 가고 싶다면 서로 만나고 인사하며 반길 수 있겠지만 과연 그 기회가 내게 얼마나 올 진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게 있어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 대부분은 지키지 못했다. 한 해를 돌아보니 그랬다. 얼마나 나는 무심한 사람이던가. 하지만 그토록 바쁘고 슬펐다고 변명을 하면 혹여나 믿어줄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쿠바리브레를 주문했다. 베이스는 럼이다. 사탕수수로 만든 술이다. 어쩌면 무색 무취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는 술이다. 그래서 더 좋기도 하지만 말이다. 밖엔 바람이 불었다. 나는 추워 코트 속으로 몸을 넣었고 가게가 그리 춥지 않다며 형은 말했다. 아니다. 이건 꿈이였던가. 가끔 과거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 꿈과 현실이 뒤섞이곤 한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할 자신이 있고,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남들이 기억하지 못할 해프닝을 두 눈으로 목도할 수 밖에 없었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골몰하기도 하는 나는...



형과 함께온 바에서 압생트를 마신 적이 있다. 조금 마셔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독특한 향이 매력적인 술이다. 압생트를 마시면 나도 과거 어느 예술가의 삶을 따라간다는 환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술을 마시며 과거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럼에도 나는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싶다. 

"형. 이건 포트 와인이야. 디저트 와인이긴 하지만 나름 매력이 있는 술이지."

한번은 동생과 다른 바를 간 적이 있다. 동생은 술을 좋아했다. 멋져 보여서 요리사가 되었다는 그는 그가 생각하는 멋진 삶을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 몇번 술을 마셨고 나도 결국 그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 괜찮은 바가 많이 생겼어. 나중에 또 다른 곳도 가보자."

나는 동생과 약속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브랜디와 와인을 섞은 포트와인은 꾸덕한 맛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볍고 단 맛이라고 해야하나. 입안에서 새로 맛보는 맛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중 집에 사들고 가 엄마에게 선물하면 좋아하겠다 싶었다. 엄마는 단 술을 좋아했으니까. 예전에 너희 엄마가 술을 얼마나 잘 마셨는데. 아빠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게 정말인진 잘 모르겠다. 지금은 맥주만 조금 마시는 엄마니까. 가끔은 엄마가 술을 많이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편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테니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체 그냥 그랬다.


연말이 지나고 연초가 되었다. 다들 집으로 몸을 움츠리고 돌아갔다. 나는 그 거리에 서서 이제 또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망설였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한 체 1월의 1/3을 삼키고 있다. 그래도 그 무언가의 즐거움을 위해 건배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한 내 힘은 가공할만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