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음식,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 그리고 마케팅
오감 중 가장 이기적인 건 미각이다. 혀의 예민한 세포들은 개인의 경험과 추억을 찾아 뱀처럼 상대를 휘감는다. 아마 미식을 즐기는 건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맛집은 결코 맛있는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 길게 줄 선 식당을 인증하고 값비싼 음식을 사진 찍는 행위는 접시를 다 비울 때까지 내가 아닌 남을 만족시키는 행위다. 미각이 아닌 시각에 집중시키며 보다 비싸게 소비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 진정한 음식을 찾고자 한다면 맛집을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맛집의 계보
우리나라 맛집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향토 음식이다. 우리나라 외식 산업은 근대 문화다. 조선시대엔 외식 문화가 없다고 될 정도로 약소했다. 심지어 70년대까지만 해도 외식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였다. 1797년 조선일보 기사다.
“외식하러 나가다가 장관과 마주친 몇몇 간부들은 '사랑방의 쌀을 쪼아먹는 닭은 들키지 않고 헛간의 겨를 쪼아먹는 닭은 들키기 마련'이라며 모처럼 외식을 하다 들통난 데 대해 안절부절 했다.”
<外食(외식)하다 들통‥‥안절부절>
이는 79년 3월. 최규하 국무총리 하 '범국민 소비 절약 운동’ 관련으로 모든 공무원들 외식을 금한 것에 따른 해프닝이다. 공무원 외식 금지령은 꽤 자주 있던 일이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약 12번 정도 있었다. 이 외에도 과거 신문을 찾으면 ‘외식’에 대한 관심도 많았는데 사회 현상을 진단하는 척도로 쓰인 것 같다. 심지어 <직장인의 식사 현황>이란 기사는 직장인들 외식 비율(29.4%)을 지적했다. 이들이 충분한 에너지 공급을 받지 못한다며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해 직장 내 구내식당 설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외식에 대한 관심에 비해 70년대엔 외식 메뉴가 다양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론 짜장면, 갈비탕, 불고기 백반, 국수, 돈가스 정도. 그러다 보니 다양한 맛을 찾기 위해 직장 내에서 도시락 시켜 먹는 문화도 있었다. 향토 음식은 이러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열망 속 태어난 단어다.
향토 음식의 탄생
77년. 문화공보부는 팔도 음식을 조사해 우리나라 전통 음식 원형을 찾기 시작했고 78년 7월, 지방마다 10개씩 총 100개 향토 음식을 선발한다. 늘어나는 외식 속 사라져가는 민족 음식을 복원하자는 취지다. 당시 향토 음식에 대해 뽑아둔 리스트를 보면 꽤 낯선 음식이 많다. 충청도 향토 음식은 호박범벅, 금산 어죽, 박속낙지탕, 도토리묵, 장떡 등이다.
향토 음식이란 단어는 지극히 서울적이다. 단어 소비가 그렇다. 전주 비빔밥, 춘천 닭갈비라고 크게 식당 간판을 전주와 춘천에서 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향토 음식 단어 탄생은 미디어 발달과 연관되어 있다. 80년대가 되면 가정마다 TV를 보유하게 된다. 이때 국내 여행도 증가한다. 국제관광공사는 81년 12월. ‘전국민 여행동태’를 조사했다. 76년에 이은 두 번째 조사로 이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숙박관광은 38.8%, 일일 관광은 58.6%로 76년도에 각각 18.8%, 19.3%인 것에 비해 2~3배 증가했다. 여행지는 강원도를 선호했고 경남, 경북 순으로 충청도는 관광 대상지에 들지 않았다.
당시 방송 소비자는 서울 시민. TV는 가 보지 못한 지역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그 지역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소비열망은 81년 여의도 광장에서 펼친 국풍 행사에서 엿볼 수 있다. ‘민족화합의 대잔치’라는 타이틀로 오 일간 진행한 행사에선 팔도의 맛, 명물을 한자리에 볼 수 있다는 걸 크게 강조했다. 그리고 그 이후 행사장에선 으레 전국 팔도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음식 부스를 만드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대전은 원래 설렁탕
이때 지방에서 실력 있는 식당들이 서울로 진출했다. 한밭식당도 이즈음 서울로 진출한다. 70년대 말, 대전 한밭식당은 깍두기와 설렁탕을 가지고 서울에 분점을 차린다. 이 사건을 경향신문 <土俗(토속)음식점 대도시 分店(분점) 시대 「고향의 맛」 속속 서울진출>이란 기사에선 한밭식당을 필두로 점차 지방음식점이 서울로 진출했다고 봤다. 이때부터 대전 음식은 설렁탕이란 인식이 생겼다. “설렁탕 하면 대전, 대전하면 한밭식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전이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건 93 엑스포다. 이때 대전 맛집에 대한 기사도 많이 양산된다. 93년도 기사를 참조해 보면 대전은 선화동 일대에 별미집이 모여있고, 유성 일대엔 향토 음식점이 있다 분석했다. 여러 식당들을 뽑지만, 대표 별미집은 숯골 원냉명, 진로집, 한밭식당, 평양숨두부, 할머니묵집이다. 당시 대전 음식에 대한 평가는 교통의 요지라 지방 특유 별미는 적지만 전국 음식이 대전식으로 토착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애초에 대전은 대전역이 생기고 사람이 오가며 생긴 도시라 대표 음식을 말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전 대표 음식은 수도권에서 관심을 얻은 대전 유명 식당 음식과 일치하는 현상을 보인다.
칼국수와 도시 마케팅
대전 대표 음식이 바뀌는 순간이 온다. 바로 칼국수다. 정확히 몇 년도부터 칼국수가 주목받았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건 2013년, 대전 칼국수 축제가 시작된다. 중구에서 시작된 칼국수 축제는 원도심에 많이 분포한 칼국숫집 정체성을 세우고 대전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당시 칼국수가 대전에 많은 이유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 우동 먹는 문화가 전파되어 칼국수 전신이 되었고 대전 주변에 밀밭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이유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살이 붙어 미군이 한국 전쟁 때 식량 원조, 한국 전쟁 때 모여든 피난민들이 각 지방의 칼국수 만들어 먹은 사연, 대전역이 구호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된 사연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칼국수가 구체적으로 마케팅 스토리를 입히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백종원의 삼대천왕 방송 프로그램이다. . 실제 구글 트렌드 분석 시 2010년 전엔 뜸한 ‘대전 칼국수’ 검색량은 대전 1회 칼국수 축제가 있는 2013년 5월에 잠시 올라가다 2015년 9월에 폭증한다. 백종원의 삼대천왕에서 대전 스마일칼국수가 반영된 시기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전은 칼국수 이미지가 잡혔다. 설렁탕 이후 대전을 대표할 만한 것이 없던 시점에서 유명 인사가 대전 맛집을 찾아준 것에 반가웠는지, 이 기점으로 대전 칼국수 맛집 소개와 칼국수 축제 재개 그리고 대전은 칼국수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그럼에도 대전시에서 운영하는 대전 관광 홈페이지에 대전 음식으로 칼국수는 들어가지 않는다. 16년도 칼럼 중 ‘대전시는 칼국수가 밥이 아닌 면 요리이고 나트륨 함량이 높아 대전 대표 음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이야기다 있다. 대전 관광 홈페이지엔 칼국수 축제 홍보대신 알수 없는 ‘후루룩 챌린지’ 행사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전은 빵의 도시?
노잼도시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19년도. 코로나로 국내 여행 관심을 가지게 되며 지역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시기다. 그리고 이 시기와 맞물려 성심당에 대한 검색 키워드는 꾸준히 증가한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대전은 볼 것 없고 대전역에서 내려 튀김소보로 사 먹으면 되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점차 증폭된 것은 아닌가 싶다. 거기에 망고시루로 대표할 수 있는 가성비 키워드까지 함께하며 주목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심당이 유명해지면서 대전은 어느 동네를 가던 빵이 맛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 이유는 성심당에서 제빵을 배운 기술자들이 각 동네로 내려가 빵집을 열었다는 것. 적절한 스토리텔링까지 이어지며 대전 빵지순례라는 말이 나오고 빵집을 중심으로 여행코스도 생겼다. 이를 기회로 삼았는지 여러 관공서에서도 성심당을 어떻게든 함께 넣어 도시 마케팅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성심당은 되고 칼국수는 안 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전은 지리적으로 지나쳐가는 도시다. 교통이 좋다는 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이방인에게 인상은 남아도 추억이 남기 어려운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대전을 대표하는 음식은 항상 외부 시선에 주목되었다. 93 엑스포 전후로 설렁탕. 2000년대에는 칼국수 그리고 지금은 빵이다. 가장 주관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추억이 담겨야 할 음식도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외부에서 정해주는 기준에 맞춰 맛집이라는 항목에 줄을 세우고 있는 건 아닐까.
맛있는 음식이 맛집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청년 주간에서 ‘맛집’이란 주제로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흥미로웠던 것은 젊은 참가자들이 생각한 맛집 정의는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었다. 맛집에 대한 정의는 시대 따라 변했다. 향토 음식과 별미를 지나 미식 문화가 생기면 원조였고 한동안은 핫플레이스가 곧 맛집이었다. 이런 흐름 속 ‘현지인이 찾는 곳’이란 시각은 특별하다. 더 이상 누군가가 정해준 기준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집이 곧 맛집인 것이다. 이때 맛있는 음식이 곧 맛집과 같은 의미로 연결될 것이다.
젊은 참가자들은 대전이 좋고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수도권 중심 콘텐츠에서 벗어나 내가 머무는 곳을 살 터전으로 생각하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들을 내 주변에 채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지겹게 들은 노잼도시 대전을 탈피하기 위해선 남들이 발견하고 와 주길 바라기 이전에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본 원고는 대전 문화예술 잡지 <월간토마토>에서
매달 미식 칼럼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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