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시점은 2월 중순으로 당시에는 코로나 확진자 동거인도 같이 자가격리를 할 때입니다.
2월 18일 금요일
새벽에 연우가 목마르다고 나를 찾았다. 새벽에는 무섭다고 물 마시러 부엌에 갈 때 꼭 나를 깨우는 놈이다. 아빠의 숙면에 대한 배려가 없지만, 그게 부모의 굴레려니 하는 마음에 새벽마다 눈 비비며 일어나고 있다. 시간을 보니 곧 출근할 시간이길래, 물을 주고 침대에 같이 누웠다. 안고 있는데, 아이라서 그런지 엄청 따뜻했다. “역시, 애들은 기초 체온이 높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건 너무 따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온계를 가지고 와서 열을 재니, 헐. 39도다. 심상치 않아서 아내를 깨웠다. 보통 8~9시쯤 느지막히 일어나는 아내는 열이 높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열이 높으니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오미크론이 전염력이 높다더니 드디어 우리 집까지?
우리 집에서 코로나에 걸릴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는 업무상 불특정 다수를 만나고, 점심시간에는 외부에서 식사를 한다. 아내는 재택근무를 하여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연우는 학원 정도 다니는데, 아이답게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감기 증상이 전혀 없었다. 혹시 무증상자였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기민하게 자가 검진키트를 편의점에서 사 왔다.
연우는 열은 있고, 어지럽다고 하였지만 감기 증상은 전혀 없었다. 기침도 하지 않고, 콧물도 나지 않았다.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혹시 확진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나도 출근을 못 하는 것인데, 갑자기 오늘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나는 내 업무를 대신 처리해줄 사람도 없다.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할 회사일이 걱정되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몹시 초조했다. 다행히 자가검진 키트는 음성이 나왔고, 나는 출근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경과를 들으니, 병원문 열 때까지 좀 자려고 했던 평균 기상 시간 8~9시인 아내는 옆에서 연우가 아프다고 본인을 괴롭혀서 잠을 자지 못했고, 병원 문의 오픈과 함께 들어가 진료를 보았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장염 같다며 약을 지어주셨고, 열이 있어 혹시 모르니 PCR검사를 해보라고 소견서를 써주셨다. PCR 검사를 하고 집에 오니 피곤했던 연우는 한숨 자러 들어갔고. 자고 일어나니 몸이 다 나은 거 같다고 쌩쌩하게 나왔다고 했다. 열을 재보니 열도 다 떨어졌고. 이건 뭔가? 잠시 몸이 안 좋았나? 희안한 일이라고 아내와 톡을 하였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니 연우는 열이 다시 오르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다 토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오니 약을 먹어서인지 열은 올랐다 내렸다 했고, 토해서 잘 못 먹는 거 외엔 별다른 증상은 없었다. 못 먹어서인지 연우는 바닥에 붙어있었고, 오랜만에 집안이 고요했다.
2월 19일 토요일
토요일은 회사에서 행사가 있어서 출근을 하였다. 행사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우, 확진이래.”
헐. 이게 무슨 일인가? 상사에게 말하고, 나만 먼저 빠져나왔다. 인근 선별검사소를 찾아서 급하게 PCR 검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음이 복잡했다. 연우가 확진이라면 옮길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한 주 전에 연우 사촌 동생이 놀러 왔었는데,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안 좋아서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던 일이 생각났다. 혹시 그게 코로나 증상이었나? 사촌동생집에 연락해보니 그 아이도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공교롭게 사촌은 그때 와 가지고 내가 여러 곳에 민폐를 끼쳤구나.
내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동선을 체크 해 보았다. 그런데, 남들을 만날 때 마스크를 벗은 적도 없고, 사적 모임은 나가지 않았다. 점심 먹을 때만 겨우 벗는데, 최근에는 혼자 먹은 날들도 많았다. 오미크론이 전염력이 엄청 나다던데, 어디에서 걸렸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심정적으로 이미 우리는 확진자 가족이었다. 연우가 자가격리를 해야 하지만, 장염 증상인 줄 알고 이미 하루 동안 함께 지냈다. 우리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경건하게 양성 확인 문자를 기다렸다. 내가 만약 양성이라면, 회사 사람들도 다 검사 받아야 하는데... 밀린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음 주에 꼭 처리할 것들이 있는데... 잠이 안 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걱정이 많이 되었다.
2월 20일 일요일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뜨니, 문자가 와 있었다. 부천에서 검사하면 다음 날 9시에 결과를 보내주는데, 회사근처에서 검사를 받으니 새벽 1시에 결과 통보가 되었다. 이래서 서울서울 하나 보다.
양성진단의 결과를 받아들이려 문자를 보니, 음성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뭐라고? 음성이라고?
잠깐. 당연히 양성인 줄 알고 자가격리 하지 않았는데. 급하게 음성일 경우를 찾아보니. 확진자 가족은 3차를 맞았을 경우에 자가격리 대상이 아니지만, 2차를 맞은 지 90일이 경과되면 자가격리 대상이었다. 나는 회사 일이 바빠 행사가 끝난 다음 주에 백신을 맞으려고 생각했었고, 당시엔 2차 맞은 지 110일 정도 되었었다. 간발의 차이로 자가격리가 된다니... 게다가 나는 증상도 없고, 음성인데... 너무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역시 음성이었지만, 3차를 미리 맞아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어차피 자유롭게 갈 곳도 없는데... 갑자기 큰 시련이 몰려왔다. 차라리 확진이 되었다면 백신 접종 유무와 상관없이 일주일 격리하고 풀려나는데. 확진자 가족으로 자가격리를 하면 최악의 경우에 연우가 나을 때쯤 아내가 걸리고, 그 다음에 내가 확진되어 3주간 못 나갈수 도 있었다. 게다가,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내도 양성일 경우에 확진자가 2명이나 있는 집에 내가 안 걸리고 일주일을 멀쩡히 버틸수가 있을까? 나는 속이 터지는데 아내는 3차 접종자의 여유인지 해맑게 최악의 사태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나 보다. 아내는 현명하게 그 당시엔 대꾸를 하지 않고, 나중에 그런거 가지고 성질냈다고 나와 같이 있는 단톡방에 이르며
‘어서, 욕을 해줘.’라며 나에 대한 비난을 유도하였다.
드라마 '지옥'에서 계시를 받고도 회사에 가는 K-직장인 얘기를 봤었는데, 그게 내가 된 거 같았다. 회사에 폐를 끼치는 기분을 참기 힘들었다. 아내는 왜 그렇게 회사에 충성하냐고 하였다.
그러게.. 왜 그러지?
어떻게든 빠르게 회사에 복귀하기 위해 연우와 아내와 떨어져 마스크를 쓰고 혼자 방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자가격리는 편하지 않았다. 수시로 체온을 쟀는데, 왼쪽 귀가 36.5도가 나오면, 오른쪽 귀가 37도 정도가 나왔다. 잠시 후 오른쪽이 36.5도가 나오면 이번엔 왼쪽이 37도가 나왔다. 애매하게 미열이 있으니 계속 양성일 경우를 시뮬레이션하게 되어 마음이 불편했다.
자가격리 마지막 날
불편하고 빡씬 자가격리 일주일이 지난 후 격리 해제를 위한 pcr결과 나는 음성 판정을 받고 회사에 출근 할 수 있었다. 출근 할 수 있다고 신나 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나는 진정한 회사의 노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염경로는 아무래도 아이들 학원이었던 거 같다. 연우네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연우랑 같이 증상을 보인 사촌 동생도 학원에서 확진자들이 나왔다고 하니. 아무래도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 무서운 속도로 퍼지는 것 같았다.
3월부터는 백신을 맞지 않은 확진자의 가족도 자가격리 대상이 아니다. 불과 1,2주 차이었는데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자가격리를 하다니 왠지 억울했다. 오미크론은 엄청난 전염력에 비해서 치명율은 낮다고 한다. 연우만 해도 감기 기운은 전혀 없이 이틀만에 멀쩡해졌고, 다른 아이들의 사례를 보면 다 이틀 정도 아프다고 한다. 집에서 멀쩡하지 않은 사람은 회사 못 가서 맘 불편한 자가격리자인 나 혼자 뿐이었고, 문 밖에서는 그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었다.
회사에 출근해보니, 휴가는 연차로 처리했다고 한다. 나는 내 연차를 쓰고, 마음 불편한 휴가를 보내다 출근하였다. 나는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