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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Oct 14. 2022

그날의 새벽공기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전학을 갔는데, 전학 전에 살던 곳은 나에게 고향 같은 곳이었다. 항상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락을 해준 친구 외엔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운 마음에 참석을 하였다. 대학 신입생때라서 밥따위는 먹지 않고 바로 술집에서 모였다. 대체로 아는 아이들 사이에 뉴비로 끼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술을 더하니 6년을 함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중 음악을 한다는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와는 다른 경험을 많이 한듯 하였고, 이야기 해주는 에피소드 하나마다 범상치 않았다. 술 자리에서 시비가 붙어서 나가는데 싸우면 질거 같아서 어떻하지? 하고 있는데 마침 맥주 궤짝에 술병머리가 보여 칼 뽑듯 뽑아서 뒤에서 머리를 내려쳤다고 한다. 그런데, 맞은 사람은 아주 멀쩡했고, 본인만 엄청 두드려 맞았다고. 나중에 왜 그런지 보니까 자기의 손에는 맥주병이 아닌 막걸리병이 들려있었다는...


어찌보면 범죄지만, 큰 가해자가 되지 않고 본인만 얻어 맞은 해학이 가득한 에피소드를 웃으며 들었다. 그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긴 생머리를 나풀거리고, 하늘하늘한 몸매, 흰 피부에 눈웃음이 이뻤던 여자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였는데 같이 얘기를 할 때면 달콤한 향수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잘 웃어주고, 말도 잘 통하였다. 고향이 나에게 좋은 선물을 줄거 같은 그런 예감?


아쉽게도 시간은 빨리 흘러서 술자리를 파할 시간이 되었다. 술집에서 나와 2차를 갈지, 집에 갈지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차를 가면 막차가 끊길거 같은 시간. 꽤 거리가 멀었던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녀에게 아직 삐삐번호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헤어지면 난 완전히 붕괴될거 같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녀는 2차를 갈 거 같았다.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한 난 2차를 가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어디를 갈까 하는데, 아까 그 범상치 않은 에피소드를 말해주던 아이가 근처에 자기 연습실이 있는데 거기에서 마시자고 한다. 어디든 마다하겠는가? 그녀가 있는데. 그 아이가 앞장서고 삼삼오오 뒤를 따라갔다. 그녀 옆에서 함께 말하며 갈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티를 내는 거 같아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따라갔다. 어짜피 목적지는 한 곳이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같이 출발한 거 같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는 것이었다. 어라? 뭔가 계획이 크게 어긋났다. 다른 친구한테 살짝 물어봤다. “금쪽이도 같이 가는거 아니었나?” “몰라. 집에 갔나보지.” 여기저기 수소문 할수도 없었고, 다시 집으로 가기엔 늦은시간. 별수 없이 연습실로 갔다. 


처음 본 연습실은 신기했다. 좁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여니 작은 두 개의 공간이 나왔다. 벽은 모두 계란판 같은 흡음재로 빈틈없이 메꿔져 있었고 방 하나에는 드럼과 기타등의 악기가. 다른 하나는 지저분하게 어지럽혀진 테이블이 있었다. 다들 신기해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한번 보여준다고 멋지게 드럼을 치는 것이다. 라이브로 듣는 드럼은 굉장히 멋 있을 뻔 했지만. 술을 많이 마셨던 그 아이는 1분도 채 연주하지 못하고 드럼에서 내려왔다. 우리도 한번 처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이를 쳐다봤는데, 손에 스프레이 통같은걸 들고 있다. 그걸 막 흔들더니 입쪽에 가져가서 치~익~ 하고 분사를 하는 것이었다. 본드를 하는건지 가스를 하는건지. 한참 하더니 너희도 할래? 물어본다. 


나는 드럼을 쳐보고 싶었다고 약이 아니라. 당연히 다들 거절을 하였고. 그 아이는 좀 지나 약기운이 도는지. 거친 말투로 우리보고 다 나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연습실 문을 잠그고 쿨하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재정신이 아니라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졸지에 건물 복도로 쫓겨난 우리들은 황망하게 서로를 쳐다볼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피씨방,찜질방이란 것이 없던 시기였기에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집에 갈 택시비도 없고…할 수 있는건 계단에 머리를 무릎사이에 쳐박고 앉아서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리는 것 뿐. 

시간이 되자 우리는 피곤과 짜증, 분노가 뒤섞여 말없이 역으로 향하였고 그 후로 만나지 않았다.


p.s. 그녀의 PC통신 아이디가 기억에 남아 있어서 쪽지를 보내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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