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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걸 Jun 01. 2020

긍정이 쏘아올린 천 개의 태양 5 -한길문고 이야기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신용호(교보문고 창립자)>

2012년 8월, 전북 군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 비로 나운동 나운 프라자 지하 1층에 있던 군산 최대 서점 한길문고가 침수되었다. 물이 천장까지 차 10만 권의 책이 모두 쓰레기로 변했다. 유일하게 건진 건 2인용 나무의자 한 개와 대형 뽀로로 인형뿐이었다. 한길문고 사장 이민우는 현장을 보고 절망했다.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진 뒤 이 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서점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흙탕물과 뻘이 가득했고 벌써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어디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웃들은 물론 전혀 안면이 없는 노인들과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휴가 나온 군인들까지 와서 힘을 합쳤다. 적은 날에는 20명, 많은 날에는 80명도 넘었다. 어떤 날에는 초등학생들이 엄마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와서 젖은 책을 나르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원봉사가 이어지는 동안 새로운 기적이 일어났다. 서점 입구에 저절로 먹을 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빵이 몇 박스 놓여 있고, 누군가 피자와 햄버거를 배달해 놓기도 했다. 인근 한의원에서는 힘내라고 원기 회복 한약을 상자째 기부했고, 근처 교회에서는 50인분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왔다. 음료수와 김밥, 떡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무려 50일 동안 서점 정리 작업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약 2500명의 시민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이민우 사장은 단 한 명의 인부도 쓰지 않고 정리 작업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도움과 지역 사회의 후원으로 이민우 사장은 같은 건물 2층에 이전보다 더 큰 서점을 열었다. 새로운 한길문고였다. 침수 사고 후 두 달 만에 벌어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왜 자발적으로 ‘서점 살리기’에 나섰을까.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서점은 일반 상점과 다르잖아요. 우리의 문화와 꿈, 미래가 있는 곳이 바로 서점 아닌가요?”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면 안 돼요. 휴대폰도 컴퓨터도 책을 대신 할 순 없다고요.”

“군산 최대 서점이 침수되었다니까, 그냥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가서 일을 도왔어요.”

현재 한길문고 안에는 40평 정도의 빈 공간이 있다고 한다. 여기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또 세미나도 할 수 있고, 작은 콘서트도 할 수 있다. 사용료는 일체 받지 않는다. 왜 사용료를 받지 않느냐고 묻자 이민우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내 서점이었지만 지금은 군산 시민의 서점이니까요.”


***

얼마 전부터 출판사도 서점도 어렵다고 한다. 갈수록 책이 팔리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책이 팔리지 않는 건 참으로 안 좋은 조짐이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의 미래는 보나마나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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