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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걸 Jun 02. 2020

긍정이 쏘아올린 천 개의 태양 7 -라라, 아빠가 간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빛을 주는 사람이다. -장 파울>

로베르트 엔케, 그는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 골키퍼이다. 그에게는 선천성 희귀 심장병에 걸린 어린 딸이 있었다. 코에 튜브를 달고 밥 먹듯이 병원을 드나들어야 생명이 유지되는 가여운 딸이었지만 그는 딸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두 살짜리 딸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아빠와 눈을 마주치길 좋아했고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딸의 미소에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늘 마음 한쪽이 쓰리고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2006년, 어렵게 삶을 이어가던 두 살짜리 어린 딸은 애틋한 아빠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만 숨지고 말았다. 아빠는 숨진 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분데스리가 하노버에서 뛰던 그는 축구화와 골키퍼 장갑을 던져버리고 팀에서 이탈했다. 축구고 뭐고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는 3개월 동안 지옥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축구장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가 이제 늪에서 나온 거라고 믿었다. 이후 그는 신들린 듯 선방을 해내며 독일 최고의 골키퍼로 우뚝 섰다. 마침내 그는 독일의 전설적인 골키퍼 올리버 칸에 이어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었다. 그의 유니폼에는 1번이 새겨졌고 다음 월드컵의 독일 골키퍼로 확정되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었다.

월드컵 개막을 몇 달 앞둔 2009년 11월, 느닷없는 뉴스가 전해졌다. 신원미상의 사내가 고속철도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차에 탄 채 철로 위에 멈춰 서 있다가 기차와 충돌했다. 근처 술집에서 로베르트 엔케를 봤다는 제보가 이어지면서 이내 사망자가 밝혀졌다. 그였다. 로베르트 엔케였다.

독일 국민들은 의아해했고 혼란에 빠졌다. 이틀 전에도 경기에 출전했던 터라 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축구선수로서 꿈의 무대인 월드컵을 앞두고 우승후보로 꼽히는 독일팀 주전 골키퍼가 자살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매스컴들은 앞다투어 독일 최고의 골키퍼를 잃었다며 애도했다.

얼마 후 딸의 무덤에서 그의 자살 이유가 밝혀졌다. 그것은 무덤 앞 작은 비석 위에 파란 글씨로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


Lala, Papa Kommt. 라라, 아빠가 간다.


라라는 3년 전 죽은 딸의 이름이었다.

이듬해 남아공 월드컵 독일의 예선 첫 경기는 호주와의 경기였다. 그날 독일팀 벤치에 그가 앉아 있었다. 백넘버 1번 로베르트 엔케, 그의 유니폼이 벤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날 독일은 호주를 4대 0으로 대파했고 독일팀 요하임 뢰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의 행진에 늘 엔케가 함께할 것입니다.’ 

그해 월드컵에서 독일은 3위를 차지했다. 


***

라라, 아빠가 간다. 처음 이 한 줄을 읽었을 때의 가슴 먹먹한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빠는 섬세하지도 부드럽지도 못하지만, 뻣뻣하고 거친 그 마음 안에 한 줌 비의를 감추고 있다. 그 어떤 고통과 운명을 넘어, 죽음조차도 훌쩍 뛰어넘어 그대에게 손 내미는 아빠의 마음을, 그대는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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