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유이 Oct 27. 2023

나만 힘든 거 아닌 거 아는데도 나는 왜 이리 괴로울까

요즘에는 죄다 사랑노래뿐이야.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그리고 제가 독립하기 전의 일이에요.


저는 언니와 제가 같이 쓰는 방에 있다가

그날도 평소처럼,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안방으로 갔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옆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처럼,

할머니란 존재 자체에 기대는

그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계절감 없는 일상복에

항상 깊게 주름진 얼굴

시기를 특정할 순 없지만

할머니와 같이 살 때니 10년 전 언저리,

가요무대 하나만으로 그날이 월요일인 건 확실해요.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던 할머니는

갑자기 볼멘소리를 하셨어요.


“요즘에는 죄다 사랑 노래뿐이야.

옛날에는 이런 노래, 저런 노래들 많았는데.”


할머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온 저는

주말에 본 가요 프로그램을 떠올렸어요.

신나는 노래, 잔잔한 노래 모두

사랑의 즐거움, 황홀경, 슬픔을 노래하고 있었어요.

그 많은 이야기도 결국

사랑이라는 주제 하나로 통일 되곤 했지요.


 ‘왜 그렇게 사랑을 노래하는 걸까?’

 ‘왜 다들 그렇게 사랑을 떠드는 걸까.’

생각이 짧았던 저는

대중 미디어 소재는 상당히 협소하네, 하면서

시니컬하게 넘긴 것 같아요.


그 당시엔 사랑이란 개념은 제게 사치였고,

받아본 기억이 없어서 와닿지도 않고,

(참고로 주어지지 않은 것엔 박탈감을 느끼진 않아요.

비교와 어중간한 관심, 줬다 뺐는 게

사람을 되게 비참하게 만들지요.)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엔

생존의 벽이 너무 커다랗게 저를 막아서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오늘 문득 Mina Okabe의

Every second를 들으며

사랑은 보편적인 무언가지만

개개인의 오리지널리티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르테르의 사랑, 게츠비의 사랑,

그리고 리지라는 귀여운 애칭이 있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이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엔 사랑이라는 추상화된

그 무엇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걸요.

그럼에도 그것은 고유성을 지니고 있죠.


‘알아! 나도! 나만 수능 보는 거 아닌 거
나도 잘 아는데, 너무 힘들어!’
‘안다고, 나도. 나만 아르바이트하는 거
아닌 거 알아.
‘나만 취업준비 하고, 나만 회사생활이 힘든 거 아닌 거 아는데 힘들다고,
너무 괴롭다고!’


이런 느낌이랄까요?





한편,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니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에요.

저에게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간증해주기도 했어요.

제가 ‘믿음의 동역자이자 지체‘가 되어주길 바랐지요.

지금까지도 그녀의 바람을 이뤄주지 못하고 있어

애석할 따름이에요.


아무튼 우리는 서투른 정리가 빗어낸 지저분함과

구석지에 얼룩으로 곰팡이진 벽지가 주는 쾌쾌함이

공존한, 두 사람의 살림을 받아내기엔

아주 작은 방에서 같이 지냈어요.


언니는 종종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감정이 담뿍 담긴

오직 저만을 위한 자신의 간증을 해줬어요.

그녀의 종교적 체험담을 듣고 나면

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만인을 위해 대속한 예수님의 희생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건데 어째서 언니는

언니 자신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한 것에 대한

동정심은 안 드는 걸까?

그리고 이미 2천 년 전의 과거 일인데

지금 있었던 것처럼?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지?’


그리고 믿음은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 나선

‘아, 나에겐 역시 이런 선물도 주어지지 않는구나.’

하면서 또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요.




이것도 앞서 말한 사랑이란 개념과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보편성, 추상성을 지닌 무언가가

개인에게 다다르는 순간

그것은 그 개인을 위한 고유성을 지닌다고요.

그리고 그 개인과 상호작용하면서

더욱 그 특유의 고유성을 지니며

그건 내면에서 숙성되고 연마되면서

다른 사람들 더욱 차별성을 지닌다고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요.

지금 내 손톱 사이에 박힌 가시가,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더 와닿는 것처럼요.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히 믿어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밤의 사색>, 반니, 헤르만 헤세, 배명자 옮김


결국 그 일반적인 것에 나를 투신하면,

운명은 갖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평소의 너답지 않다며 저를 좌절시키겠지요.

저는 지지 않고 이를 빠득빠득 갈며

다시 몇 번이고 다시금, 다시금 나를 내던지면

지친 운명이 두손 두발 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결국 저는

제 고유성이 담긴 사랑을 빗어내려고 해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결말을 보더라도요.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코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