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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Jul 17. 2018

25_첫째와 둘째, 그들의 입장 차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어서 다행입니다.

156.

부모는 흔히 첫째와 둘째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첫째는 첫째이고, 둘째는 둘째입니다. 

한 어미에게서 잉태되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생명체입니다. 

저마다의 감각과 재능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사고패턴과 반응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두 아이에게 항상 알맞은 대응을 하기는 힘들지만,

무엇보다 두 아기가 같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관찰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첫째는 첫째여서 첫째의 환경에서 시작하고, 

둘째는 둘째여서 둘째의 환경에서 시작합니다. 

첫째와 둘째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모든게 풍성한 천국에 입성한 유일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모든 걸 독차지 합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온 집안사람들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정수리로 쏟아져 내립니다. 

그는 단 한 명의 아기이기 때문에 굳이 무언가를 쟁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지는 형국입니다. 

쟁반 위에 딸기가 몇 개 남았는지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딸기는 모두 첫째의 소유입니다. 

딸기가 먹고 싶다면 포크를 들고 손만 뻗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딸기 같은 것은 아이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이에 반해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무엇보다 둘째에게는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라이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라이벌은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셉니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신이 당해내기에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힘으로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므로 둘째는 여러 방법들을 본능적으로 터득해나갑니다. 

울음을 터뜨리고, 엄살을 부리고, 고자질을 하고, 투정과 애교를 부립니다. 

쟁반 위의 딸기가 3개 남으면 최소한 2개를 먹기 위해 허겁지겁 손을 놀립니다. 







157. 

첫째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한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아야 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하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그 뜨겁던 사랑이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옮겨갑니다. 

사랑의 대이동은 돌연하게, 한순간에 이루어집니다.

더구나 그 사랑의 증발은 첫째의 잘못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닙니다. 

대관절 왜 이런 시련이 자신에게 들이닥쳤는지 첫째는 알 수가 없습니다. 

첫째가 둘째를 만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실연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질투가 활활 타오릅니다. 

동생이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간 주범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동생을 꼬집게 되는 겁니다. 


아내와 나는 큰 뚜루뚜에게 이런 상황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미의 뱃속에서 점점 자라는 동생을 함께 지켜보았고, 

그 결과 동생을 처음부터 동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자칫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어른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동생의 편을 듭니다. 

동생이 더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장자의 시대는 이미 종말의 고했습니다. 

어른들은 첫째라고 해서 편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째의 상실감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힘이 듭니다. 


그래서 퇴행이 일어납니다. 

형은 동생처럼 울고, 칭얼거리고, 매달립니다. 

족히 한두 살은 어린아이처럼 굽니다. 

아내와 나는 큰 뚜루뚜의 퇴행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안아주고, 설명해주고, 다독입니다. 


인생에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지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158. 

관계의 매듭은 첫날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고 있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그렇게 됩니다. 

형제와 자매의 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관계가 처음부터 온전히 연결되도록 아비가 도와주고 싶습니다. 


때때로 형제와 자매 사이의 관계 형성이 한 사람의 성격으로 굳어지지는 않을까. 

미련한 아비는 노파심에 큰 뚜루뚜와 작은 뚜루뚜를 지켜봅니다. 

큰 뚜루뚜는 4살 차이가 나서 인지 동생이 조금 못 마땅해도 때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동생이 마구 까불며 형을 때려도 분통을 터뜨리고 엄포를 놓을 뿐입니다. 

차마 동생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작은 뚜루뚜는 동생답게 그러거나 말거나 형에게 달려들어 까붑니다. 

그래도 큰 뚜루뚜는 자신이 형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하려고만 든다면 동생을 내동댕이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둘 사이의 투닥거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만 않으면 됩니다. 

대립을 포기하고 습관적으로 한쪽이 양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자칫 아이에게 스며들어 성격으로 고착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일정량의 투닥거림은 바람직합니다. 


내가 뚜루뚜뚜루뚜에게 제시한 가장 큰 둘 사이의 룰은, 

힘든 일을 해야 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동생이 먼저 혜택을 받고, 

둘이 서로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서열이 위인 형이 먼저 하는 것입니다. 

형은 동생에게 배려하고, 동생은 형에게 양보하기를 희망합니다. 


투닥거림으로 인해 훈육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두 아이 모두의 잘못을 설명해줍니다. 

한쪽만 혼내거나, 한쪽 편만 들지 않습니다. 


허나 이 세상에 완전한 룰이 어디 있겠습니까. 

작은 뚜루뚜는 호시탐탐 룰을 무시하고 형의 영역은 넘봅니다. 

큰 뚜루뚜는 아비를 향해 동생의 방자함을 탓하며 이번만큼은 자신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명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둘 모두에게 조언합니다.      







159. 

작은 뚜루뚜가 네 살이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막내의 인기순위에서 어미가 밀려나고 형아가 1등을 차지합니다. 

엄마보다 형아가 좋다고 말한 것은 난생처음입니다. 

나는 아내를 훔쳐보며 남몰래 고소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도 이제 꼴찌의 설움을 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과 어미가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승부를 다투는 형국입니다. 


나는 옆에서 애가 탑니다. 

"아빠도 있잖아." 

작은 뚜루뚜는 아비가 마음에 들면 하해河海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 공동 2위에 올립니다. 

이러나저러나 아비는 꼴등입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선배가 “야, 나는 우리집 4등이야!” 말하던 농담이 내 일이 됩니다.

개나 고양이에게도 밀리는 아비라니!

참 서글픕니다. 


아비와 어미와 달리 형과 동생은 서로에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동생은 형아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하루종일 따라다닙니다. 

둘은 은밀히 비밀을 공유하고, 함께 작당하여 금지된 일을 모의합니다. 


굳건한 협력관계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위기를 맞이합니다. 

동생은 곧잘 형아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형아는 말을 듣지 않는 동생이 얄밉고, 

동생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형아가 야속합니다. 


그래서 다시 세계대전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풀어져서는 둘이 다시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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