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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imjiy Nov 26. 2023

비전공자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왜 네트워크 책을 썼을까?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올해 4월 말에 브런치에서 연재 중인 해치지 않는 웹 네트워크 시리즈를 토대로 한  책, 『그림으로 쉽게 이해하는 웹/HTTP/네트워크』책을 출간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고, 그중 자주 듣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비전공자에다가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왜 뜬금없이 네트워크 책을 쓰게 되었는지가 그것이었죠.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할 겸 비전공자로 시작한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어떻게 네트워크 책을 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네트워크가 궁금했던 문과 비전공자

비전공자로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된 저에게 소위 CS라고 불리는 컴퓨터 공학 지식은 할머니집 선반 위의 과자 상자 같았습니다.

뭔가 맛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높아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제가 취업할 당시에는 한창 '기본기를 아는 신입이 문제 해결 능력이 좋다'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분위기였기에 그 갈망은 더욱 컸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공학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고, 그 시작은 네트워크였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네트워크를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웹 동작 방식을 배우고 있었는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HTTP라는 개념이 나왔고, 이 HTTP라는 것은 또 뭘까 하는 식으로 개념을 타고 들어가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네트워크 분야를 공부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제가 궁금해하는 개념을 그때그때 배우는 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네트워크의 전체 흐름에 대해서 이해하기도 쉬웠고, 또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네트워크 개념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렇게 공부한 내용을 나 혼자만 보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당시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괜찮은 소재거리를 찾고 있기도 했고요. 제가 처음 개념을 접했을 때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쉽게 웹과 네트워크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그림과 비유를 곁들여 쉽게 개념을 설명하는 스타일이 만들어졌습니다.

2019년 11월에 처음으로 쓴 글

그렇게 첫 포스팅을 올리게 된 이후,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텀은 길었지만 꾸준히 글을 올렸습니다. 중간에 개인 블로그를 정리하고 브런치로 이전하는 과정도 있었죠.

그렇게 약 3년 정도 글을 올리고 브런치 시리즈의 포스팅이 약 7개 정도 쌓인 시점에 놀랍게도 지금의 출판사에서 출간 의뢰 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책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막연한 꿈은 꾸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기회가 생기니 정말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더라고요. 그 이후 약 1년 정도 원고 작업을 거치고『그림으로 쉽게 이해하는 웹/HTTP/네트워크』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쓰고 나서 든 생각들

책을 쓰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느리지만 그래도 계속 글을 쓰기 잘했다"였습니다.

자기 계발과 관련한 많은 강의나 책에서 종종 꾸준함에 대해 언급합니다. 저 또한 그런 내용을 많이 접했고요. 다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꾸준함은 매일 아침 6시에 미라클 모닝을 하고,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매일 2시간을 투자하라는 등 제게는 조금 버거운 조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루틴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몇 달이 걸려도 상관없으니 글 쓰는 행위를 잊지 말고 지속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실제로 제가 『해치지 않는 웹 네트워크』브런치 시리즈를 연재한 기록을 보면 글이 한두 달에 한 번씩 글이 올라오는 식입니다. 간혹 몇 달이 걸리기도 했고요.

가장 긴 간격은 무려 7개월이었습니다.

이렇게 긴 간격을 두고 글을 쓰다 보니 비록 단기간에 폭발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저는 제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고, 지금까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일주일에 한 번 글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딱 한 번 글쓰기를 놓치면 크게 좌절하는 성격이었다면 아마 제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도 큰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노트로 작용할 수 있었던 글이 독자 분들을 만나 비로소 영향력을 갖고 블로그 포스팅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 몸짓처럼 말이에요. 지금도 간혹 가다 한 번씩 재미있게 읽었다는 댓글이 달리면 감사함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홍보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기에는 남에게 제가 쓴 글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워서 따로 블로그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블로그 글을 본 회사 동료분이 내용이 좋다고 얘기해 주셨고, 그 계기로 용기를 얻어 조금씩 사람들에게 제 글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깃허브나 링크드인 계정에 블로그 링크를 연동하기도 하고, 글을 올리면 오픈 채팅방이나 지인들에게 공유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하루에 1,000명 이상이 보는 정도로 트래픽을 높여보기도 하는 등 많은 분들께 제 블로그를 알리고, 출간 연락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꾸준히 사람들에게 제가 쓴 글을 알리며, 비슷한 퀄리티의 글이더라도 영향력이 이렇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애매한 재능은 연금술이다

단언컨대 저는 개발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일하며 세상엔 저보다 코딩도 잘하고 개발 지식도 풍부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특히 개발 업계는 그런  타고난 천재들이 더 많은 영역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는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고, 틈날 때마다 이런 특별한 세상에서 애매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조금씩 잘하는 것을 묶어서 나라는 사람을 브랜딩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될 수 없다면, 여러 작은 들꽃을 모아 꽃다발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죠.


마침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했기에 "그림으로 컴퓨터 개념을 설명하는 작가"라는 소재를 떠올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보다 그림을 잘 그리지도, 소설가보다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개발 실력도 뛰어나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을 적절히 잘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네트워크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책까지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지금의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무조건 나를 갉아먹는 저주라기보다는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 황금을 만들 수도 있는 연금술이라고요.




최근에는 뜨개질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 일과 전혀 상관없는 취미이긴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마법의 재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의 애매한 재능 또한 언젠가 놀라운 수식으로 여러분을 빛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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