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백일의 인내
굴속의 곰
하늘에서 환웅이 내려왔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거느리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왔다. 인간이 되고 싶다고. 환웅은 조건을 내렸다 —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마라. 그러면 인간이 될 수 있다.
곰과 호랑이는 굴속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쑥을 먹고, 마늘을 먹고,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견뎠다.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곰은 남았다. 백일을 채웠다. 곰은 여자가 되었다. 웅녀(熊女). 웅녀는 환웅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다. 단군. 한민족의 시조.
이 신화를 건국 서사로만 읽으면, 곰의 인내 속에 담긴 심리적 깊이를 놓친다.
어둠 속에 머무는 기술
융은 **변환(Transformation)**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밝은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변환은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연금술사가 물질을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첫 번째 단계를 '니그레도(Nigredo)' — 검은 단계 —라고 부른 것처럼, 심리적 변환도 어둡고 답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곰의 굴속 백일은 이 니그레도의 형상화다. 쑥과 마늘만 먹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것만으로 버틴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것, 익숙한 것, 자극적인 것을 다 내려놓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으로 하루를 산다. 햇빛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외부의 확인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 변화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
일상에서 이 경험은 이렇게 나타난다. 직장을 잃거나 관계가 끝난 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시간. 새로운 것을 시작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시간. 이 시간을 우리는 대개 '낭비'라고 부른다. 빨리 벗어나야 할 것으로 본다. 호랑이처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곰은 남는다. 그 어둠이 변환의 조건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여기서 대모(Great Mother) 원형을 짚어야 한다. 융은 어머니 원형이 단순히 '어머니'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모 원형은 탄생시키는 힘이면서 동시에 삼키는 힘이다. 땅은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지만, 그러려면 씨앗은 먼저 어둠 속에 묻혀야 한다. 곰이 굴속에 있는 것은 땅속에 묻힌 씨앗과 같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환이 일어나고 있다.
곰이 여성 — 웅녀 — 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둠과 인내를 통과하여 대모 원형과 만난 것이다. 곰의 야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야성이 새로운 형태로 변환된 것이다. 단군신화는 한민족의 기원을 이 변환에서 시작시킨다. 나라의 시작이 정복이 아니라 인내에서 나온다는 것, 이것이 이 신화의 심층 메시지다.
당신의 백일은 지금 며칠째입니까
누구에게나 굴속의 시간이 있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노력해도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 이전의 내가 무너졌는데 새로운 내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사이의 시간. 그 시간을 우리는 실패라고 부르거나, 우울이라고 부르거나, 공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말한다 — 그 어둠은 공백이 아니라 잉태다. 씨앗이 땅속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곰은 백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곰에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뛰쳐나간 것은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호랑이는 강했다. 강해서 견디지 못했다. 어둠 속에 가만히 있는 것은 강한 것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드러운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이 바위를 뚫듯이, 인내가 변환을 만든다.
이직을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려보라. 혹은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고 실제로 말하기까지의 시간. 결심한 날부터 실제로 행동하는 날까지, 아무도 모르게 견디는 시간이 있다. 밖에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일하면서,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준비하는 시간. 곰이 굴 속에서 마늘을 먹으며 견딘 백일이 바로 이 시간이다.
지금 자기 삶에서 "어둠 속의 백일"에 해당하는 시간이 있는가. 있다면 —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변환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완전히 바뀌고 있는 시간이다. 조급해하지 않는 것. 곰은 백일을 다 채웠고, 호랑이는 중간에 나갔다.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견딤이었다.
당신의 백일은 지금 며칠째입니까. 뛰쳐나가고 싶은 날이 있더라도 — 오늘은 하루만 더 굴속에 머물러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