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달라졌다-최승희. 세계를 매혹하다

세계가 감탄했다. 그리고 세계가 잊었다.

by 응시

다들 "조선의 무희"로 안다. 최승희. 경성에서 도쿄로, 파리·뉴욕·브뤼셀까지 간 세계적 무용가. 피카소가 공연을 보았고, "세계 10대 무용가"라는 평을 받았다. 1936년, 손기정과 함께 조선인의 우상이 됐다. 그리고 월북. 숙청. 1969년 사망.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5편에서 다루려는 것은 최승희의 인생이 아니다. 최승희가 조선 여성의 몸과 삶에 무엇을 열어놓았는가이다.


한복이 보여준 것, 감춘 것

한복은 몸의 윤곽을 지웠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치마 자락이 흔들리는 선. 저고리 위 어깨의 곡선. 종종걸음의 리듬. 조선 여성의 아름다움은 몸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에서 평가됐다. 보폭을 좁게, 치마가 흔들리지 않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신하다"는 칭찬은 곧 몸을 작게 만드는 것이었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것. 아름다움과 통제가 같은 단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몸은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것이었다. 결혼으로 이전되는 재산. 출산을 위한 도구.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에게 없었다.


양장이 바꾼 것

3편에서 카페 여급이 양장을 입고 거리를 걸었다. 몸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때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뀌었다. 움직임에서 체형으로. 걸음걸이가 아름다운 여성에서, 체형이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것은 옷의 전환이다. 아직 몸 자체의 전환은 아니다.


던컨에서 최승희까지

이사도라 던컨. 현대무용의 어머니. 토슈즈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벗는 것"이 서양 근대무용의 시작이었다.


이시이 바쿠.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던컨의 영향을 받았다. 1926년 경성공회당에서 공연. 열여섯 살의 최승희가 이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던컨 → 이시이 바쿠 → 최승희. 그러나 최승희는 던컨을 복제하지 않았다. 던컨은 서양 고전에서 벗어나려 했다. 최승희는 조선의 전통에서 출발해 근대로 갔다. 승무, 검무, 장구춤을 근대적 무대 언어로 번역한 것. 파괴가 아니라 전환.

서양에서 "벗는 것"이 해방이었다면, 조선에서는 "드러내는 것" 자체가 혁명이었다.


몸이 드러난 순간

1930년, 최승희가 경성공회당에서 첫 신무용발표회를 열었다. 무용복은 몸의 선을 보여줬다. 팔의 움직임, 허리의 회전, 다리의 각도. 한복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무대 위에서 보였다.


한복이 감추면서 보여줬던 것을 최승희가 드러내면서 보여줬다. 한복의 "움직임의 미학"이 근대적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한복에서는 움직임만 보였고 몸은 감춰져 있었다. 최승희의 무대에서는 움직임과 몸이 동시에 보였다.


한복 → 양장 → 무용복. 세 단계의 전환.

한복: 몸을 감추고 움직임으로 평가.

양장: 몸의 윤곽이 드러나고 체형으로 평가.

무용복: 몸의 움직임 자체가 예술. 몸이 표현의 주체가 됨.

"몸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 이것이 조선 여성이 자기 몸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누가 무엇을 보았는가

이 변화는 모든 조선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았다.

도시 엘리트 남성. "조선 여성이 세계 무대에 섰다"는 민족적 자부심과 "몸을 드러내는 여자"라는 성적 소비가 동시에 작동했다. 1편에서 윤심덕에게 "정사의 여자" 딱지를 붙인 구조와 같다.


도시 여성. 여기가 핵심이다. 최승희의 무대는 도시 여성에게 "내 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인식을 열었다. 한복 안에서 몸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었다. 최승희 이후, 몸은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됐다.


농촌 여성. 영향이 거의 없었다. 유성기도 없고 신문도 안 읽는 농촌에서 최승희를 알 방법이 없었다. 한복은 여전히 유일한 옷. 근대는 도시에만 왔다.


해방과 대상화

도시 여성에게 열린 이 변화에는 양면이 있었다.

해방. "내 몸은 내 것이다."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의 발생. 감춰야 할 것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이 조선 여성이 근대인이 되는 가장 원초적인 순간이다.

대상화. 그러나 몸이 보인다는 것은 몸이 평가된다는 것이다.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 "내 몸을 더 잘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도 같이 왔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거울 앞에서 자기를 검열하기 시작하는 것. 해방이 곧 새로운 억압의 시작. 이것이 근대의 역설이다.


몸에서 삶으로

몸에 대한 소유권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 몸이 내 것이면, 내 삶도 내 것이 된다. 연쇄적으로 터진다.


연애. 내 몸이 가문의 것이면 연애는 불가능하다. 내 몸이 내 것이어야 내가 누구를 좋아할지 결정할 수 있다. 윤심덕의 자유연애가 스캔들이 된 것은 이 전환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 내 몸이 내 것이면, 내 몸을 어디에 쓸지도 내가 결정한다. 3편의 카페 여급이 시장에 노동력을 판 것. 4편의 강주룡이 자기 몸을 지붕 위에 올린 것. 전부 같은 뿌리다.


발언. 내 몸이 내 것이면, 내 목소리도 내 것이다. 2편 유관순이 법정에서 식민 권력을 부정한 것. 3편 여급이 잡지에 수기를 쓴 것.


윤심덕이 자유연애를 한 것, 금홍이 다방을 경영한 것, 강주룡이 지붕에 올라간 것, 최승희가 세계 무대에 선 것 — 전부 "내 몸은 내 것이다"의 변주다.


한국 무용의 전환

최승희 이전: 춤 = 기생이 추는 것 = 천한 것.

최승희 이후: 춤 = 예술 = 세계가 인정하는 것.

최승희가 편찬한 《조선민족무용기본》이 남북한 무용의 교과서가 됐다. 북한 무용은 지금도 최승희의 체계를 따르고, 남한에서도 월남한 제자 김백봉을 통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 몸은 사라졌지만 몸의 문법은 남았다.


그러나 "내 몸은 내 것이다"를 실행한 여성은 전부 벌을 받았다.


자유연애를 하면 — "정사의 여자."

교육받고 행동하면 — "만세 소녀"로 축소.

경제 주체가 되면 — "이상의 여자"로 환원.

노동자로 싸우면 — 기억에서 삭제.

세계 무대에 서면 — "친일 무희" 딱지.

자유를 행사하면 벌을 받는 구조.


이것이 1편부터 5편까지를 관통하는 단일 주제다.

개인은 파괴됐다.

그러나 개인이 열어놓은 길은 닫히지 않았다.

윤심덕의 음반이 여성 대중문화를 열었고,

카페 여급이 근대적 미를 퍼뜨렸고,

강주룡이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를 시작했고,

최승희가 여성의 몸을 예술로 만들었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견인자.


지금까지 남은 것

거울 앞에서 "더 말라야 해", "여기가 빠져야 해"라고 느끼는 습관.

자기 몸을 타인의 눈으로 보는 습관.

한복에서 양장으로, 양장에서 무용복으로.

여성의 몸이 드러날 때마다 두 가지 시선이 동시에 작동했다 — "아름답다"와 "위험하다".


최승희는 이 경계 위에서 춤췄다. 세계가 감탄했다. 그리고 세계가 잊었다.

남한에서는 "친일 무용가".

북한에서는 "숙청된 인민배우".

세계를 누빈 무용가가 남과 북 어디에도 자기 자리가 없다.


그러나 최승희가 열어놓은 것 — 조선 여성의 몸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인식 — 은 닫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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