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손가락들

전태일보다 40년 먼저 지붕에 올라간 사람이 있었다. 여자였다.

by 응시

다들 전태일을 안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한 스물두 살의 재단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한국 노동운동의 시작으로 기억된다.


교과서에 있다.

그런데 전태일보다 40년 먼저 지붕에 올라간 사람이 있었다. 여자였다.

1929년 원산 총파업. 2,200명의 노동자가 80일간 도시를 마비시켰다. 한국 노동운동사 최대 사건. 교과서에 있다.

1931년 평양 을밀대. 강주룡. 혼자. 광목을 찢어 밧줄을 만들어 12미터 지붕에 올라갔다. 교과서에 없다.


공장의 여자들

1930년대 조선의 공장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업종에 따라 50~80%에 달했다. 방직, 제사, 고무, 성냥. 식민지 산업의 노동력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조선의 산업화는 여성의 손 위에 세워졌다.

10대 소녀가 대부분이었다. 기숙사에 갇혀 있었다. 연고가 없었다. 임금은 남성의 절반. 그런데 이 여성들은 숫자로만 존재했다. 몇 명이 일했고 임금이 얼마였는지는 기록에 있다. 이름은 없다.


욕망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 그것이 전부였다.


강주룡

강주룡. 평양 출생. 천민 계층. 과부. 평양고무공장 여공.

공장 감독의 성희롱은 일상적이었다. 낮에는 기계에 종속되고, 밤에는 감독의 시선에 종속됐다. 남성 노동자에게는 육체적 착취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에게는 육체적 착취 위에 성적 착취가 겹쳤다.

봉건적 신분 질서가 "어떤 여성의 몸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구분을 만들었다. 자본은 그 구분을 활용했다. 봉건의 신분 차별과 자본의 노동 착취가 여공의 몸 위에서 결합했다.

1931년, 임금 삭감이 발표됐다. 강주룡은 을밀대로 갔다.


을밀대, 12미터

광목을 찢어 밧줄을 만들었다. 12미터 지붕 위에 올라갔다. "여성 해방, 노동 해방"을 외쳤다. 글을 쓸 수 없었으니 몸으로 말한 것이다.

을밀대 아래에 평양 시민들이 모였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천민의 딸. 과부. 여공. 사회가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은 여성이 가장 높은 곳에서 외치고 있었다. 봉건적 신분 질서와 성별의 굴레가 동시에 깨지는 장면이었다. 사회 전체가 "근대"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목격한 계기였다. 신분이 사람의 값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 여성도 자기 목소리를 가진 주체라는 것.

강주룡은 30세에 빈민굴에서 죽었다.


기억의 불균등

원산 총파업은 한국 노동운동사의 첫 페이지에 있다. 2,200명, 80일, 국제 연대. 규모와 조직성이 기록의 크기를 결정했다.

같은 시기 방직·제사·고무 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의 파업이 빈번했다. 그러나 이 파업들은 "노동운동사"의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남성의 파업은 "운동"이 되고, 여성의 파업은 "쟁의"로 분류된다.

전태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아버지로 기억된다. 강주룡은 전태일보다 40년 먼저 지붕에 올라갔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름을 모른다. 전태일이 분신한 평화시장 앞에는 동상이 있다. 강주룡이 올라간 을밀대에는 아무것도 없다.

같은 투쟁인데 왜 기억의 크기가 다른가. 남성의 죽음은 "운동의 시작"이 되고, 여성의 죽음은 사라진다.


남성 문학의 시선

카프 문학은 노동자의 고통을 썼다. 계급은 보고 젠더는 보지 못했다. 여성 노동자의 고유한 경험 — 성희롱, 절반짜리 임금, 기숙사 감금 — 은 중심이 아니었다.


견인

식민지 산업을 실제로 떠받친 것은 여공의 몸이었다. 방직, 제사, 고무 — 공장 노동력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남성은 산업을 기획하고 관리했지만, 산업을 실제로 돌린 것은 여성의 손이었다.

그리고 강주룡에서 시작된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가 있다. 1970년대 동일방직과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 1980년대 구로공단의 여공들. 지금도 현장에서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

강주룡이 남긴 것은 고공농성이라는 방법이 아니다. 천민의 딸도, 과부도, 여공도 주체로 설 수 있다는 자부심. 신분과 성별의 굴레를 동시에 벗어던진 자부심. 그것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사의 첫 페이지가 원산이 아니라 을밀대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남은 것

"여성의 노동은 진짜 노동이 아니다." 여공의 절반짜리 임금에서 시작된 이 구조가 돌봄 노동, 감정 노동, 가사 노동이 인정받지 못하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동시에, 지붕에 올라간 기억도 이어진다. 강주룡의 이름을 몰라도, 을밀대의 높이를 몰라도, 여성 노동자가 주체로 선 계보는 끊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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