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 원화, 기생 — 하락의 패턴
한국 역사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하나 있다.
성스러운 여성이 천한 여성이 되는 패턴이다.
무녀가 그랬다. 삼국시대에 무녀는 하늘과 사람 사이를 잇는 존재였다. 제사를 주관하고, 점을 치고, 공동체의 결정에 관여했다. 성스러운 자리였다. 그런데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되면서 무녀의 자리가 바뀌었다. 제사는 유학자가 주관하게 됐고, 점은 미신이 됐다. 무녀는 국가 의례의 중심에서 밀려나 마을 굿판의 가장자리로 갔다. 조선에 이르면 무녀는 법적으로 천민이 된다. 하늘과 사람을 잇던 자리에서 사람들이 꺼리는 자리로. 기능은 남았으나 지위는 사라졌다.
신라의 원화(源花)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원화는 화랑 이전에 존재했던 여성 지도자 집단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원화는 무리를 이끌고 덕행과 재능을 겨루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두 원화 사이의 갈등으로 제도가 폐지되고, 그 자리를 화랑이 대신했다. 여성 지도자의 자리가 남성에게 넘어간 것이다. 원화의 미(美)와 덕(德)이 결합된 역할은 사라지고, 미만 남은 자리가 훗날 기생의 자리와 닮아 있다.
직접적인 계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녀에서 기생으로, 원화에서 기생으로 이어지는 직선은 사료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다만 구조가 반복된다. 성스러운 기능을 가진 여성이 있었고, 그 기능이 축소되고, 축소된 뒤에 남는 것은 몸뿐이었다.
기생에게서도 같은 패턴이 보인다.
조선 초기의 기생은 예인(藝人)이었다. 교방에서 수년간 훈련을 받았다. 가곡, 정재, 서화, 한시. 이것은 단순한 유흥 기술이 아니라 궁중 의례에 필요한 예술이었다. 기생은 관청의 공식 연회에서 공연했고, 외교 사절의 접대에 동원됐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능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기생의 기능이 축소된다. 궁중 의례가 간소화되면서 교방의 역할이 줄었다. 관기 제도가 약해지면서 기생이 민간 기방으로 흘러갔다. 민간 기방에서 기생에게 요구되는 것은 달라졌다. 가곡을 부르는 능력보다 손님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예술이 유흥으로 축소됐고, 유흥이 접대로 축소됐고, 접대가 성적 서비스로 축소됐다.
축소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몸이다. 기능이 하나씩 벗겨지면 몸만 남는다. 하늘과 사람을 잇던 무녀의 몸. 무리를 이끌던 원화의 몸. 가곡을 부르던 기생의 몸.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몸은 그 자리에 있다. 다만 그 몸에 붙는 이름이 달라진다. "성스러운"이 "천한"으로 바뀐다.
이것은 제도의 문제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국가가 필요로 할 때는 성스럽고, 국가가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천하다.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국가이고, 가치를 거두는 것도 국가다. 개인은 그 사이에서 같은 몸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이것을 '탈가치화'라고 부른다.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가 외부에 의해 결정되고, 외부의 평가가 바뀌면 자기 가치도 바뀌는 구조. 스스로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세상이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을 때, 그 간극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어제까지 존경받던 사람이 오늘부터 멸시받는다. 하는 일은 같다. 달라진 것은 제도뿐이다.
무녀가 그것을 견뎠다. 기생도 그것을 견뎠다.
견디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제도가 부여한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천민이라는 이름을. 다른 하나는 이름과 상관없이 자기 기술을 이어가는 것이다. 무녀는 굿을 계속했다. 기생은 노래를 계속했다. 제도가 가치를 거두어도, 몸에 남은 기술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성스러운 것이 천해지는 데는 제도의 결정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천해진 자리에서 자기 기술을 이어가는 데는 한 사람의 생애가 필요하다. 한 번의 결정과 한 생애의 지속. 이 불균형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기록은 결정을 남긴다. 지속은 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