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이후.
기방에서 나간 기생은 어디로 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모른다. 기록이 없다.
기적(妓籍)에는 기생이 들어온 날짜가 적혀 있다. 나간 날짜는 적혀 있지 않다. 장부에는 기생의 값이 적혀 있다. 값이 사라진 뒤의 삶은 적혀 있지 않다. 기방은 기생이 있는 동안만 기생을 기록했다. 떠난 뒤에는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이 문장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퇴기(退妓)에게는 세 갈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첩이 되는 것이다. 권력자나 부유한 상인이 기생을 첩으로 데려갔다. 경제적으로는 안정됐다. 그러나 이동의 자유가 사라졌다. 3편에서 다뤘듯이, 경제적 보호는 물리적 구속과 같았다. 기방에서 나왔으나 다른 방에 갇힌 것이다. 방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둘째, 사설 기방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관허 기방에서 퇴기된 기생이 무허가 기방으로 간 경우가 있었다. 사설 기방은 관청의 관리를 받지 않았다. 규제가 없다는 것은 보호도 없다는 뜻이다. 관허 기방에서는 적어도 기적이 있었고, 행수가 있었고, 최소한의 체계가 있었다. 사설 기방에는 그것조차 없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존재가 기록되지 않았다.
셋째,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고향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떠돌았을 수도 있다. 추정만 있고 증거는 없다. 이 세 번째 갈래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것이다. 기방에 있는 기생은 경제적 자산이었다. 기방을 떠난 기생은 자산이 아니었다. 자산이 아닌 것은 기록하지 않는다. 이것이 제도의 논리다.
다른 하나는,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생은 글을 알았다. 한시를 짓고 서화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 삶을 기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록은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퇴기 이후의 삶에 여유가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
심리학에서 '제도적 유기'라는 개념이 있다. 제도가 만들어낸 존재를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버리는 것이다. 군인이 전쟁이 끝난 뒤 사회에서 방치되는 것, 운동선수가 은퇴 후 지원 체계 없이 놓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기생은 제도가 만들어낸 존재였다. 관청이 교방을 세우고, 훈련시키고, 기적에 올리고, 기방에 배치했다. 기생의 기술은 제도가 요구한 것이었다. 가곡을 부르라고 한 것은 기생이 아니라 제도였다. 손님을 맞으라고 한 것도 기생이 아니라 제도였다.
그런데 기생의 값이 떨어지면, 제도는 기생을 내보냈다. 가곡을 부르게 한 제도가, 가곡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가곡을 부르는 사람을 버렸다. 기술을 가르쳐놓고, 기술이 필요 없어지면 기술을 가진 사람을 버리는 것. 이것이 제도적 유기다.
퇴기된 기생의 몸에는 기술이 남아 있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춤을 출 수 있었다. 시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쓸 자리가 없었다. 기술은 있으나 자리가 없는 상태. 이것이 퇴기의 삶이다.
현대에도 이 구조는 반복된다. 회사가 직원을 훈련시키고, 직원이 필요 없어지면 내보낸다. 기술은 남아 있다. 자리가 없다. "경력 단절"이라는 말이 이 구조를 가리킨다. 경력은 끊기지 않았다. 기술은 몸에 남아 있다. 끊긴 것은 경력이 아니라 자리다.
퇴기의 삶을 기록한 사람은 없다. 퇴기가 자기 삶을 기록한 글도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것은 빈자리뿐이다. 기적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리. 장부에서 숫자가 사라진 자리. 마루에서 사람이 사라진 자리.
기록은 있는 것을 남긴다. 없는 것은 남기지 않는다.
퇴기의 삶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