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1920년대, 경성.
축음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레코드판이 돌아가고, 바늘이 홈을 따라갔다. 노래가 방 안을 채웠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권번 기생이었다.
권번(券番)은 근대의 기방이었다. 조선의 교방이 사라지고, 일제강점기에 기생을 관리하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기생은 권번에 소속돼 훈련을 받고, 요정이나 연회에 파견됐다. 구조는 조선의 기방과 비슷했다. 달라진 것은 하나였다. 대중이 생겼다.
조선의 기생은 손님 앞에서만 존재했다. 마루에 앉은 사람만이 기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기생은 레코드와 신문을 통해 마루 바깥의 사람에게도 닿았다. 왕수복의 목소리는 축음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이화자의 얼굴은 신문을 펼치면 보였다. 그리고 선우일선은 영화관의 은막에서 볼 수 있었다. 기생이 대중 앞에 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다.
조선의 기생에게 "보이는 것"은 소수의 손님에게 한정됐다. 손님 열 명 앞에서 아름다워야 했다. 근대의 기생에게 "보이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확장됐다. 신문 독자 수만 명 앞에서 아름다워야 했다. 보는 사람의 수가 달라졌다. 보이는 사람의 부담도 달라졌다.
권번 기생 중 일부는 가수, 영화배우가 됐다. 레코드를 녹음하고, 공연을 하고, 이름이 알려졌다. 팬이 생겼다. 이것은 조선의 기생에게 없던 경험이었다. 조선의 기생은 단골손님에게 인정받았다. 근대의 기생은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받았다. 얼굴을 본 적 없는 사람이 이름을 알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사진을 오려 모았다.
이 구조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 구조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다.
기생에서 권번 기생으로, 권번 기생에서 가수로, 가수에서 연예인으로. 이 계보에서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보이는 것이 직업"이라는 구조다. 기생은 손님에게 보였다. 가수는 청중에게 보였다. 연예인은 대중에게 보인다. 보는 사람의 규모가 달라졌을 뿐, "보이는 사람"의 자리는 같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대상화라고 부른다. 한 사람을 인격이 아니라 볼거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기생은 손님에게 대상화됐다. 연예인은 대중에게 대상화된다. 대상화의 주체가 손님 한 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는 같다.
다만 하나가 다르다.
조선의 기생은 대상화를 거부할 수 없었다. 법적으로 천민이었고, 거절하면 퇴기 됐다. 현대의 연예인은 선택할 수 있다. 계약을 끊을 수 있다. 카메라를 피할 수 있다. 선택지가 있다.
그런데 그 선택지를 사용하는 연예인은 드물다. 대중의 시선을 거부하면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법적 강제는 없지만 경제적 강제가 있다. 보이지 않으면 잊힌다. 잊히면 수입이 끊긴다. 자리를 지키려면 보여야 한다.
조선의 기생이 손님 앞에서 웃어야 했던 이유와, 현대의 연예인이 카메라 앞에서 웃어야 하는 이유가 다르지 않다.
기생은 사라졌다. 권번도 사라졌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기생에서 가수로, 가수에서 연예인으로, 연예인에서 인플루언서로.
보는 사람은 늘어났다. 보이는 사람의 자리는 좁아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의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잘 묻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