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서 허락된 자리.
궁궐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이 있었다.
환관이다. 내시라고도 불렀다. 거세된 남성. 궁궐 안에서 왕과 왕비 곁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남성이었다. 유일하게 허락된 이유는 하나였다. 남성이되 남성의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환관 제도는 조선만의 것이 아니었다. 중국, 오스만 제국, 비잔틴 제국에도 있었다. 권력의 가장 안쪽에 들어가기 위해 몸의 일부를 제거하는 구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다만 조선의 환관 제도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
조선의 환관은 대개 어린 나이에 거세됐다. 자발적인 경우도 있었고, 가족이 결정한 경우도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들을 궁에 보내기 위해 거세하는 일이 있었다. 네다섯 살에 입궁하는 궁녀와 마찬가지로, 환관도 선택 없이 제도 안에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거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학적으로는 생식 능력의 제거다. 사회적으로는 남성 역할의 박탈이다. 조선은 유교 사회였다. 유교에서 남성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대(代)를 잇는 것이었다. 자식을 낳아 가문을 이어가는 것. 환관은 이 의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남성의 몸을 가졌으나 남성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존재. 이것이 환관의 첫 번째 경계다.
기생이 신분의 경계에 있었다면, 환관은 성(性)의 경계에 있었다.
궁궐 안에서 환관의 위치는 독특했다. 왕의 침전에 출입할 수 있었다. 왕비의 거처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 남성도 여성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 환관은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능력이 아니라 결핍 때문이었다. 무엇을 가져서가 아니라 무엇을 잃었기 때문에 허락된 자리였다.
이 역설을 정면으로 보아야 한다.
환관의 권한은 환관의 상실에서 나왔다. 잃은 것이 많을수록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깊었다. 이것은 신뢰가 아니다. 위협이 제거됐다는 판단이다. "이 사람은 해를 끼칠 수 없다"는 판단이 환관의 출입증이었다.
현대 심리학에서 '신체 온전성 침해'라는 개념이 있다. 자기 몸의 일부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훼손되는 경험이다. 이 경험이 만드는 심리적 영향은 깊다. 몸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감각이 생긴다. 자기 몸에 대한 통제감이 무너진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적 상실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근거가 흔들리는 경험이다.
환관은 이 경험 위에서 평생을 살았다.
기록을 보면, 환관은 궁 안에서 상당한 실권을 가진 경우가 있었다. 왕의 측근으로서 정보를 전달하고, 명령을 중계하고, 때로는 정치에 관여했다. 중국에서는 환관이 황제를 좌지우지한 사례가 무수하다. 조선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환관이 왕의 신임을 받아 권세를 누린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권세가 존중은 아니었다.
환관은 권세를 가져도 양반에게 존중받지 못했다. 양반은 환관을 '불완전한 존재'로 봤다. 유교적 인간관에서 몸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고,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었다. 환관의 몸은 이미 훼손된 몸이었다. 유교적 기준에서 환관은 효도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권력은 있으나 존중은 없는 상태. 기생이 교양은 있으나 신분은 없었던 것과 같은 구조다. 가진 것과 인정받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는 삶. 그 간극 안에서 자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환관의 정체성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남자인가. 남자의 몸을 가졌으나 남자의 기능이 없다. 나는 궁의 사람인가. 궁 안에 살지만 궁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권력자인가. 권력이 있으나 그 권력의 원천은 나의 상실이다.
환관이 이 질문을 의식적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이 없다. 환관의 내면을 기록한 글은 조선에 남아 있지 않다. 환관은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기록에는 나오지만, 환관 자신의 감정을 담은 기록은 없다. 궁녀와 마찬가지다. 제도의 기능으로는 기록되지만, 제도 안의 사람으로는 기록되지 않는다.
한 가지 흔적이 있다. 조선 후기 환관들은 양자를 들이는 관행이 있었다. 자식을 낳을 수 없으므로 남의 아이를 데려와 대를 이었다. 이것은 유교적 의무를 이행하려는 시도였다. 거세로 잃은 것을 제도적 방법으로 보완하려 한 것이다. 몸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제도로 하려 한 것이다.
이 시도가 말해주는 것은, 환관이 자기 상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식하지 못했다면 양자를 들일 이유가 없다. 잃어버린 것을 알고 있었고, 되찾으려 했다. 되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양자는 자식이 아니다. 대를 잇는 형식은 갖추었으나 형식이 본질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궁녀는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환관은 자기 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궁녀의 상실은 관계의 상실이었고, 환관의 상실은 몸의 상실이었다. 둘 다 제도가 만든 상실이었다.
궁궐의 담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왕과 왕비의 바로 옆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