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시간에 맞춰 깨어 있는 사람들.
궁녀의 하루는 왕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왕이 깨면 궁녀도 깼다. 왕이 자면 궁녀도 잘 수 있었다. 문제는 왕이 언제 깨고 언제 자는지 궁녀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왕은 새벽에 일어났다. 묘시(卯時), 대략 오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 왕이 일어나기 전에 수라간은 아침 수라를 준비해야 했다. 침방은 의복을 준비해야 했다. 세답방은 세수 물을 준비해야 했다. 왕이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야 했다. 갖춰져 있지 않으면 벌이 있었다.
이것은 왕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수라간 궁녀는 인시(寅時),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어나 불을 지폈다. 침방 궁녀는 전날 밤에 미리 옷을 준비해 두었지만, 새벽에 다시 확인해야 했다. 주름이 잡히지 않았는지, 먼지가 앉지 않았는지. 왕의 옷에 먼지 한 점이 궁녀의 벌이 됐다.
밤은 어땠을까.
왕이 잠자리에 들어도 궁녀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 왕의 침전 바깥에 궁녀가 대기했다. 밤새 대기하는 것을 입직(入直)이라 했다. 왕이 밤중에 물을 찾거나, 촛불을 요구하거나, 누군가를 부르면 궁녀가 즉시 응해야 했다. 잠들 수 없었다. 잠들면 벌이 있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고, 밤 열두 시에도 잠들지 못하는 삶. 이것이 매일 반복됐다.
현대 심리학에서 만성적 수면 박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잘 연구돼 있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판단력이 흐려진다. 면역 체계가 약해진다. 이것은 며칠의 수면 부족이 아니라 수년, 수십 년의 수면 부족일 때 더 심각해진다.
궁녀는 수십 년간 이 상태에서 살았다.
흥미로운 것은, 궁녀의 수면 부족을 문제로 기록한 사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왕의 수면은 기록됐다. 왕이 잠을 못 이루면 의관이 불려 왔고, 그 사실이 《승정원일기》에 적혔다. 궁녀가 잠을 못 이루는 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궁녀의 수면은 궁녀의 권리가 아니라 왕의 필요에 종속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이 없는 삶이 무엇을 만드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생 시리즈에서 "기생의 하루"를 다룰 때, 새벽을 "유일하게 자기 시간"이라고 썼다. 기생에게는 새벽이라도 있었다. 손님이 떠난 뒤, 기방이 잠든 뒤, 혼자 있는 시간. 궁녀에게는 그 새벽조차 없었다. 새벽은 수라를 준비하는 시간이었고, 밤은 입직하는 시간이었다.
자기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감정은 혼자 있을 때 정리된다. 슬픔을 느끼려면 멈춰야 한다. 멈출 수 없는 사람은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느낄 틈이 없는 것이다.
궁녀는 느낄 틈이 없었다.
이것이 2편에서 다룬 "감정둔마"의 또 다른 원인이다. 2편에서는 침묵이 감정을 닫는다고 했다. 4편에서는 시간이 감정을 닫는다. 말할 수 없어서 닫히고, 멈출 수 없어서 닫힌다.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 감정의 통로는 이중으로 막힌다.
궁궐의 밤은 고요했을 것이다. 왕이 잠든 뒤, 촛불이 줄어들고, 처마 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는 시간. 그 고요한 밤에 궁녀는 깨어 있었다. 잠들 수 없었다. 잠들면 안 됐다.
고요한 밤에 깨어 있는 것.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긴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