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의 손

수만 땀의 바느질, 사라지는 의식.

by 응시

침방 나인의 하루는 바늘로 시작해서 바늘로 끝났다.

앉는다. 천을 편다. 바늘을 든다. 실을 꿴다. 찌른다. 당긴다. 다시 찌른다. 다시 당긴다. 이것을 하루에 수천 번 반복한다. 내일도 같은 일을 한다. 모레도 같은 일을 한다. 수십 년 동안.


침방(針房)은 궁궐에서 의복을 만들고 수선하는 부서였다. 왕의 옷, 왕비의 옷, 왕실 가족의 옷. 계절이 바뀌면 옷이 바뀌었다. 의례가 있으면 옷이 필요했다. 궁중 의복은 한 벌을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자수 하나에 수만 땀이 들어갔다. 그 땀 하나하나를 나인의 손이 놓았다.


정교함이 요구됐다. 솔기가 비뚤어지면 안 됐다. 실 끝이 밖으로 나오면 안 됐다. 바늘땀의 간격이 일정해야 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궁에게 꾸중을 들었고, 심하면 체벌을 받았다. 완벽함이 기준이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벌이었다.


이 노동의 특성을 보아야 한다.


침방 나인의 노동은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한다. 반복적이다. 정밀하다. 끝이 없다. 반복적이라는 것은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의식이 완전히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 끝이 없다는 것은 완료의 감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 세 조건이 겹치면 묘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몸은 움직이고 있다. 바늘이 천을 찌르고 있다. 실이 당겨지고 있다. 그런데 의식은 반쯤 떠 있다. 완전히 깨어 있지도 않고, 완전히 잠들지도 않은 상태. 몸은 여기에 있고, 마음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기생 시리즈에서 해리를 다뤘다. 기생의 해리는 트라우마에서 왔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의식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침방 나인의 분리는 다른 경로로 온다. 트라우마가 아니라 반복에서 온다.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하면 몸이 기억한다. 몸이 기억하면 의식이 필요 없어진다. 의식이 필요 없어지면 의식이 떠난다. 이것은 방어기제가 아니다. 적응이다. 반복에 적응한 몸이 의식을 놓아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될 때다.


의식이 반쯤 떠 있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감각이 흐려진다.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바느질이 끝나면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시간이 뭉개진다. 아침과 저녁의 구분이 흐려진다. 어제와 오늘의 구분이 흐려진다.


이것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보다 무서운 것이다. 고통은 느껴진다. 이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 채로 시간이 지나가는 것. 그것이 침방 나인의 하루였을 수 있다.


《궁중발기》에 침방의 작업량이 기록돼 있다. 왕실 혼례 때 필요한 의복의 목록, 소요되는 천의 양, 작업 기간. 숫자는 있다. 그 숫자를 만들어낸 손은 기록되지 않았다. 자수 한 땀에 걸리는 시간, 하루에 놓는 땀의 수, 손가락에 생긴 굳은살의 두께. 이런 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나인의 손은 도구였다. 바늘이 도구이고, 나인의 손도 도구였다. 도구는 기능으로 기록된다.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기록된다. 도구가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궁중 의복의 자수가 정교하다고 사람들은 감탄한다. 그 정교함을 만든 손이 하루에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에 감탄하고, 아름다움을 만든 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 기생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다뤘던 구조가 여기서도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