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사람들

궁녀의 침묵, 궁녀의 고립

by 응시

궁녀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침묵이었다.

보되 말하지 말 것. 듣되 전하지 말 것. 알되 모르는 척할 것. 이 세 가지가 궁녀의 첫 번째 규율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궁녀는 왕의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왕이 누구와 만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밤에 어디에서 자는지 — 궁녀는 이 모든 것을 봤다. 왕실의 가장 은밀한 정보가 궁녀의 눈과 귀를 통과했다.


그래서 입을 닫아야 했다.


《경국대전》에는 궁녀가 궁중 일을 외부에 누설할 경우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다. 처벌의 수위는 기록마다 다르지만, 극단적인 경우 사형에 이르렀다. 말 한마디가 목숨과 직결됐다. 침묵은 예절이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기생 시리즈에서 "기생이 들은 것"을 다룬 적이 있다. 기생도 듣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생과 궁녀의 침묵은 구조가 다르다.


기생은 들은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궁녀는 들은 것을 말하면 안 됐다. 말하면 죽었기 때문이다. 기생의 침묵은 구조적 배제였고, 궁녀의 침묵은 제도적 강제였다. 기생은 말할 곳이 없었고, 궁녀는 말할 곳이 있었으나 말하면 죽었다.


이 차이가 심리적으로 다른 것을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면 안 되는 것은 다르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체념한다.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은 억제한다. 체념은 포기에 가깝고, 억제는 긴장에 가깝다. 궁녀의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긴장이었다. 매 순간 "지금 이것을 말해도 되는가"를 판단해야 했다. 판단을 잘못하면 죽었다.


현대 심리학에서 이것을 '만성적 자기 검열'이라고 부른다. 자기가 하려는 말을 자기가 먼저 검사하는 것이다. 한 번 검사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문제는 이것이 매 순간 반복될 때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 마디를 하기 전에 반드시 검열을 거쳐야 할 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다.


말하고 싶은 자기와 말하면 안 되는 자기가 분리된다.


궁녀의 하루를 상상해 보자. 왕의 수라상을 올리는 소주방 궁녀가 있다. 이 궁녀는 왕이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남겼는지, 식사 중에 누구와 이야기했는지 모두 본다. 밤에 동료 궁녀와 방에 돌아와도 이것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말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옆에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료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제도가 모든 사람을 잠재적 밀고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궁중에서는 궁녀가 다른 궁녀의 잘못을 고발하면 포상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고발의 대상에 '누설'이 포함됐다. 동료가 적이 될 수 있는 구조 안에서, 침묵은 자기 보호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구조가 만드는 것은 고립이다.


궁녀는 수십 명, 수백 명이 함께 살았다. 같은 방에서 자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일을 했다. 물리적으로는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항상 혼자였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은 함께 있어도 혼자다. 침묵은 사람을 고립시킨다. 소리 없는 고립이다.


궁녀들 사이에서 '언니' '동생'이라는 호칭이 있었다고 1편에서 다뤘다. 그러나 이 가족적 호칭 안에서도 진짜 속마음을 나누는 것은 위험했다. 언니에게 말한 것이 상궁에게 전해지면, 그 말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었다. 가족의 이름을 빌렸으나 가족의 신뢰는 없었다. 이름은 따뜻했으나 관계는 차가웠다.


궁녀의 침묵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다.


궁녀는 자기감정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했다. 슬퍼도 울 수 없었다. 화가 나도 표현할 수 없었다. 왕의 앞에서는 물론이고, 상궁의 앞에서도, 동료의 앞에서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였다. 감정은 사적인 것이고, 궁에 사적인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삶이 오래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표현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면, 느끼는 것 자체가 둔해진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감정둔마'라고 부른다.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통로가 닫히는 것이다.


궁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삶이었다.


그 침묵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궁녀 자신도 몰랐을 수 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너무 오래되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힌다.


기록은 궁녀의 침묵을 기록하지 않았다. 침묵은 소리가 없으므로 기록할 수 없다. 그러나 소리가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궁궐에서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은 궁녀였다. 궁궐에서 가장 적게 말한 사람도 궁녀였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거리가 궁녀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