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는 몇 살에 들어갔나

제도가 설계한 어린 시절

by 응시

궁녀는 대개 네다섯 살에 궁에 들어갔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나이였다. 어머니의 얼굴을 겨우 기억할 나이였다. 그 나이에 궁궐 담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것은 수십 년 뒤이거나 영영이었다.


입궁은 대개 자발적이 아니었다. 궁녀의 대부분은 양인(良人) 또는 천인(賤人) 집안의 딸이었다. 궁에서 차출 명령이 내려오면 가문은 거부할 수 없었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딸을 궁에 보내는 것이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했다. 보내는 쪽의 사정이 있었고, 받는 쪽의 필요가 있었다. 보내지는 아이의 사정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궁에 들어간 아이는 먼저 소속이 정해졌다. 침방, 수방, 소주방, 세답방. 부서가 곧 운명이었다. 침방에 배치되면 평생 바느질을 했다. 소주방에 배치되면 평생 음식을 만들었다. 네다섯 살에 정해진 부서가 쉰 살까지 바뀌지 않았다. 선택한 적 없는 일을 평생 하는 것. 이것이 궁녀의 시작이었다.


훈련은 곧 시작됐다. 상궁이 가르쳤다. 말투, 걸음걸이, 앉는 자세, 고개 숙이는 각도. 모든 것에 규칙이 있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이 있었다. 벌의 형태는 기록마다 다르지만, 체벌이 일상적이었다는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네다섯 살 아이가 배우는 첫 번째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복종이었다.


현대 심리학에서 '조기 분리'라는 개념이 있다. 아이가 주 양육자에게서 이른 나이에 떨어지는 것이다. 조기 분리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하다. 애착 형성이 어려워지고, 감정 조절이 불안정해지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 이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환경의 결과다.


궁녀의 입궁은 제도화된 조기 분리였다. 국가가 설계한 분리였다. 아이를 가족에게서 떼어놓고, 궁이라는 제도 안에 넣고, 제도가 양육자를 대신했다. 상궁이 어머니를 대신했다. 그러나 상궁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상궁의 역할은 돌봄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돌봄과 훈련은 다르다. 돌봄은 아이의 필요에 맞추는 것이고, 훈련은 제도의 필요에 아이를 맞추는 것이다.


궁녀는 제도의 필요에 맞춰졌다.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다. 《궁중발기》에는 궁녀들이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는 호칭 체계가 나온다. 선배 궁녀가 '언니'이고, 후배 궁녀가 '동생'이다. 이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가족이 없는 곳에서 가족의 구조를 흉내 낸 것이다. 어머니가 없으니 상궁이 어머니 역할을 했고, 자매가 없으니 동료가 자매 역할을 했다.


그러나 흉내는 진짜가 아니다.


상궁은 후배 궁녀를 벌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벌주더라도 내보내지 않는다. 상궁은 내보낼 수 있었다. 언니라고 부르는 선배 궁녀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같은 부서에서, 같은 자리를 향해, 같은 규칙 아래서 경쟁했다. 가족의 이름을 빌렸지만 가족의 안전은 없었다.


궁녀는 이 구조 안에서 평생을 살았다. 네다섯 살에 들어가서, 서른이 넘으면 상궁이 될 수 있었다. 상궁이 되지 못하면 나인으로 남았다. 나인으로 남으면 죽을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했다.


밖에 나갈 수 있었을까. 거의 없었다. 궁녀는 궁 밖 출입이 극히 제한됐다. 혼인이 금지됐다. 궁 안이 세계의 전부였다. 네다섯 살에 들어온 아이에게 궁 밖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을 것이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리움도 희미해진다. 그리움이 희미해지면 밖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이것은 적응인가, 상실인가.


궁녀가 궁 안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을 적응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적응의 조건이 선택 불가능할 때, 그 적응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선택 없는 적응은 적응이 아니라 체념이다.


네다섯 살 아이는 체념할 줄 모른다. 그냥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받아들이려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궁녀는 익숙해졌다. 그것을 우리는 "궁녀의 삶"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