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피서지
7월 23일자 한국경제 신문, 고두현 문화살롱에 동양은 계곡, 서양은 바다…피서명소 왜 다를까? 라는 글이 실렸다.
산수(山水)문화와 해양(海洋)문화의 차이일까. 동양 그림에는 산과 계곡을 담은 산수화가 많다.
무더위를 식히는 피서 풍경도 마찬가지다. 서양 그림에는 바다와 해안 풍광이 많다. 유럽 북서부 바닷가나 지중해 연안이 주요 배경이다.
무더위가 동서양을 가릴 리 없지만, 이에 조응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문화의 토양과 정서적 지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피서지도 그렇다. 동양에서는 산이나 계곡, 서양에서는 바다나 섬을 먼저 떠올린다.
한자로 ‘휴가(休暇)’는 ‘편안하게 쉴 틈’을 뜻한다. ‘쉴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편히 앉은 모습이고, ‘틈 가(暇)’는 한가한 날(日)을 빌린다는 뜻이다. 미리 날짜를 잡아 숲에서 평화롭게 쉬는 게 곧 휴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 피서지는 숲과 계곡을 품은 산이다.
나는 동양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 확실하다. 온몸으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바다 보다는 깊은 숲 속 계곡물에서 노는 편이 훨씬 좋다. 시원한 폭포 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얼마전 남편과 영주와 안동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풍기인견, 풍기인삼으로 유명한 소백산 자락의 풍기지역에 자리한 온천리조트에서 1박을 했다. 여행객이 그리 많지 않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객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어서 코로나 시기에 여행 가기 적합한 곳이었다. 특히 그곳에서 맞본 수제 더덕막걸리는 시원하고 달콤 쌉싸름한 맛이 끝내주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마자 소백산국립공원 내 희방폭포를 찾았다. 산길을 따라 차를 몰고 올라가 입구에 주차를 하고 약 10분 정도만 오르면 해발 700m 높이에 위치한 희방폭포를 만날 수 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어서 온전히 폭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서 인지 28미터 되는 높이에서 폭포수가 웅장하게 쏟아져 내렸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한참을 감상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온천욕 뒤에 먹은 아침은 꿀맛이었다.
안동에서는 도산서원을 둘러본 뒤 만휴정을 찾았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김태리가 이병헌에게 '우리 러브합시다.' 했던 그 다리가 있는 곳. 만휴정은 16세기 초에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아래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을 이룬다. 김태리와 이병헌 처럼 사진 찍으려고 외나무 다리 위에서 대기하는 방문객 몇 커플 있었지만 우리는 조용히 벗어나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라고 씌여진 너른 바위 위에 앉아 시원한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잠시 놀다가 내려왔다.
특별히 정해진 나만의 피서법은 없지만 대체로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곳에서 한가롭게 더위를 식히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도 한잔 하면서 책 좀 보다가 졸리면 자고 몸이 찌뿌둥 하면 요가도 하고 그런 여유. 자연 바람이 좋지만 안되면 쾌적한 에어콘 바람이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