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스승과의 만남
2015년 봄 어느 날 내 삶이 혼란하던 시기에 인생의 선생을 만났다. 당시 꽉 막힌 사무실의 자리가 답답해 견디기 힘들었고 요가로의 전업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런 답답함을 해소해 보고자 광화문 어딘가에서 열리는 8시간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당시 점심시간에도 명상의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각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오라는 안내를 받아 낯선 거리를 배회하던 중 다심헌 티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1층에 있던 곳도 아니고 간판도 건물 한참 위쪽에 걸려있었는데 어떻게 눈에 들어왔는지 신기하다. 오래된 건물 계단을 올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한 얼굴의 주인장이 나를 맞았다. 그분이 내 인생의 스승, 조국선 선생이다. 그날은 사실 일요일이라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이었는데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 잠깐 문을 열어둔 틈에 내가 들어간 것이다. 사정 설명을 했더니 앉으라고 맞아주셨고 차와 함께 요기하라며 포슬포슬 따뜻한 새하얀 백설기도 함께 내어주셨다. 그렇게 나는 운명적으로 그분과 만났다. 덕분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명상 모드를 유지하며 차분하고 소박하게 점심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 뒤로 틈만 나면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이 다심헌을 찾았고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모든 약속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잡았다. 내 친구들 중 다심헌에 안 가본 친구들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날씨가 화창하게 좋은 날이면 반차를 내고 다심헌에 들러 몇 시간이고 차를 마셨다. 그곳은 언제나 기분 좋은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창가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있어 그저 조용히 차를 마시며 계절의 변화를 감상하기에도 좋았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쾌적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나를 위한 케렌시아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손님으로만 다심헌을 찾다가 선생께서 다도 수업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개인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차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우리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설레는 첫 수업은 독일 발도르프 학교에서 아침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이 함께 읊는 시라며 루돌프 슈타이너의 시 낭송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태양이 비치고 있고
그 안에는 별들이 빛나며
그 안에는 돌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식물들이 생기 있게 자라고 있고
동물들이 사이좋게 거닐고 있고
바로 그 안에
인간이 생명을 갖고 살고 있다.
나는 영혼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신의 정신이 빛나고 있다.
그것은 태양과 영혼의 빛 속에서,
세상 공간에서,
저기 저 바깥에도
그리고 영혼 깊은 곳 내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 신의 정신에게
나를 향할 수 있기를,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힘과 축복이
나의 깊은 내부에서 자라나기를.
개인지도로 차를 배울 수 있게 된 것도 설레었는데 그 시작을 시로 열어서 감동을 받았다. 선생은 내가 차를 배우기로 한 것을 칭찬하면서 인생은 회전판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해줬다. 지금 당장 내 과업인 앞뜰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언젠가 회전판이 돌듯 뒤뜰이 앞뜰이 될 때가 있으니 뒤뜰도 잘 가꾸어 두면 언젠가 그 뒤뜰이 앞뜰이 될 때 당황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지혜로운 이야기에 또 한 번 스승에게 반해버렸다. 개인지도가 끝난 후에도 애제자로 아껴주신 덕분에 계속 이어져온 소중한 인연이다. 언제나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 인생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