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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에 대하여 Apr 23. 2024

죽은 자, 이별에 초연해지는 법

슬픔을 줄이는 법이 있을까?


할머니가 떠나고

사랑하는 강아지가 떠나고

곁에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떠나고

죽음이 만드는 이별이란 그 어떤 이별보다 슬프다.


가령

미국으로 건너간 친구랑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엔 연이 끊겨 

송별 식사가 인생 마지막 식사가 된다면..

그만큼 슬플까?


영원히 못 보는 것,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죽음의 슬픔 발 끝만 못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년쯤 되었을 땐가. 어느 날 밤 이유 없이 몰아쳐온 그리움 때문에 가슴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었던 밤. 

울음을 그치고 생각했다.


그리고 닿은 결론은 못 보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이 너무도 명확하여 슬픈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것과 다른 너무나도 명확한 단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지구 멸망이 예측되어 가령 일주일 뒤에 행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하는 예보가 되어있다고 치자.

그럼 오늘의 할아버지 죽음은 이만큼 슬프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슬픔을 빠르게 극복하고, 눈물은 몇 방울로 그치고 

'할아버지 저희도 곧 갈게요 먼저 가 편히 계세요~' 하며

남은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내는 데에 몰두했을 거다.


이입하여 생각해 보면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치 평균 수명 이상은 당연하게 살거라 생각하고 

남은 여생만큼을 못 보는 그리움으로 환산하여 슬퍼하고 있는 것 같다.

(일 평균 국내 사망자가 천여 명이나 되는데 당연히 나는 여기에 없지-)


나는 윤회설과 인연설을 믿는 사람인데 슬픔에 매몰되는 건 내 믿음이 견고하진 않군. 싶기도 하다.

인생을 더 크게 보자. 이번 삶에 국한하지 말고.

(이렇게 또 내 맘 편할 대로의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추모. 그리고 그 감정은

당연하고 또 인간이기에.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슬픔에 젖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사람 누구에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써본다.


만남도 이별도 혼의 생을 놓고 보면 찰나겠지요.

이별을 추모하되 함몰되진 말고

남은 소중한 것들에 다시 시선을 돌려보시길. 만남도 이별도 짧으니.


그리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움. 그때는 가끔 눈물을 흘려도 좋으니

소시오패스가 아닌 이상 지구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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