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zi May 25. 2018

입질의 서막이 오르다!

미얀마에 사는 신혼부부, 시바견 호두와의 소소한 일상

  시바견은 성견이 되기 전까지 입질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시바견 견주들이 모여있는 네이버의 한 카페에는 입질을 당하고 충격에 휩싸인 견주들의 많은 상담글들이 올라와있다.


'아이가 너무 공격적이에요ㅠㅠ'

'커서도 물면 어떡하죠?ㅠㅠ'

'손이 찢어져서 꿰매고 왔어요ㅠㅠ'


 대부분의 댓글은

'이갈이 끝나면 거짓말처럼 입질이 줄어들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유치 빠지면 입질 줄어듭니다!'

'크면 너무 얌전해져서 이 때가 그리워질거에요ㅠㅠ'


 그리고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있는 문장. 

'힘내세요!!'




 아닐거야. 호두는 안그럴거야.

 세상 억울하게 생긴 탓에 '우리 아이는 혹시 입질 없이 얌전하게 이 시기를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조금은 기대를 했다. 그리고 이것이 헛된 기대였음을 깨닫는 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억울한 게 많아서인지 더 열심히 물어댔다. 걸어다녀도, 멈춰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억울한 표정으로 달려와서는 손, 팔, 다리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물어댔다. 무는 힘이 세지는 않았지만 유치가 날카로운 탓에 여기저기 훈장처럼 상처가 남았다. 훈장의 이름은 '나 시바 키운다아!!!'.


억울하게 생겼다. 언뜻 보면 곰 같기도 하다. 시커먼 주둥이가 매력.
유치가 날카로워 쉽게 상처가 남는다. 마이 아파.
손이 말랑말랑해서 씹기 좋단 말이지, 냠냠
그래도 나 이쁘지?

 밤이면 얌전히 울타리 안에서 자던 호두가 어느날부터 침대 위를 넘보기 시작했다. 침대 밖으로 흘러나온 이불에 발톱을 걸어 암벽등반하듯이 올라오는 호두를 보며 '곧 침대를 빼앗기겠구나.' 생각했다. 반려견을 안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은 남편의 오래된 로망. 나도 2년 전까지는 반려견을 안고 자는게 일상이었던지라 고민할 것도 없이 울타리를 치우고 간이계단을 설치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다 금새 계단을 이용해 침대 위로 올라오는 호두. '우리 강아지 똑똑하다, 천재'라며 호두보다 더 신이 난 팔불출 두 명. 그렇게 호두는 '침대멍'이 되었다. 제발 쉬야만 하지 말아다오.

나를 풀어줘라. 빨리 풀어줘라! (뒤의 박스는 다리가 짧아 켄넬로 올라가질 못해서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준 계단)
침대 위에 안올려주면 바닥에서 잘 거야!
네. 올려드립죠. 침대 위에서 신이 난 호두.

  "호두야, 잘 잤어?"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호두를 깨웠는데, 어머나, 세상에. 두 귀가 뿅! 서 있었다.

 "호두야, 너 귀가! 귀가 섰어! 아이구, 예뻐라!"

 엄마의 호들갑에 호두는 '뭐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다시 풀썩 누워 꿈나라로 갔다. 나는 감격에 젖어 '첫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거겠구나' 생각했다.

 두 귀가 선 호두는 더 이상 억울해보이지 않았다. 앉아만 있어도 너무 귀여워 사진을 안찍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전의 모습을 더 볼 수 없다는게, 호두가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다는게 아쉬웠다. '아이가 너무 금방 크는 것 같아서 서운해, 더 자라지 말고 이대로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호두야. 넌 아빠, 엄마가 가슴으로 낳은 우리 딸이야. 더 많이 사랑해줄게. 그러니까 그만 좀 물었으면 좋겠다. 이쁜아.


싫어! 그래도 물 거야!
이렇게 접혔던 두 귀가
뿅! 귀여움이(가) +1000000000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엄마, 나 이뽀?
크아앙!! 분노조절장애로 갑자기 화를 내는 호두
분양 전, 태국에서 받은 호두 영상. 기운이 없어보인다. 이 영상을 보고 꼭 이 아이를 입양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마지막 영상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호두야, 행복하자!

작가의 이전글 나의 하루를 너에게 줄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