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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May 31. 2021

일을 미루는 것도 일이다

Stop my procrastination

일을 미루는 것도 일이다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사실 일을 미루는 습성이 있다. 특히 이런 성격이 극성을 부리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잘 해내고 싶은 과제가 주어졌을 때, 사야할 게 있을 때, 봐야할 책이나 영화가 있을 때 등등...사실, 타임라인이 없는 일이라면 미루고 미루더라도 끝내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해야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습관은 정말이지 쥐약이었다. 회사일은 확실한 기한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괜찮았지만(책임감은 꽤 높은 편이라 다행이다), 개인생활은 엉망이었다. 이사부터 요가학원 알아보기까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인데도 퇴근 후나 주말에는 인터넷 검색 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몇 개월치 to do list가 탑처럼 쌓여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해야할 일을 미룬다고 그것들이 사라지진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자질구레한 일들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온 몸이 흠뻑 젖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물을 잔뜩 먹은 솜이불이라도 된 냥 몸을 가누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별 것 아닌 일도 처리하기 귀찮아 널부러져 있게 된다. 결국 남는 거라곤 찜찜함, 고민만 하느라 낭비한 시간, 게으른 자신을 자책하느라 버린 감정, 몸을 배배 꼬느라 쓴 에너지 따위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분명 아쉬워질 시간이고 감정이니 아까워할 줄 알아야겠더라.



일을 미루지 않으려면, 그냥 해버리면 된다


 일을 미루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다. 생각났을 때 하면 된다. 스케쥴러를 펼치고 to do list를 쓸 시간에 해버리면 그만인 거다. 그래서 지난 몇 개월간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생각의 퓨즈를 끊어버리고, 그냥 행동해봤다. 행동이 너무 빠르게 나가는 이들에게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나처럼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병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지혜와 용기가 더 필요했다.



공을 들였던 건지 시간을 끌었던 건지


 내 브런치 글목록을 스르륵 훑어보면 알겠지만, 발행 빈도수가 낮은 편이다. 생각해둔 소재는 정말 많다. 다만, 이제 발행해도 되겠다ㅡ싶을 정도로 글을 완성하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다. 문단 하나를 다듬는데도 몇 시간이 걸리니까. 아마추어고, 구독자가 많은 계정도 아니지만 글 하나를 발행하더라도 능력 안에서 최대한 잘 쓰고 싶었다. 그러니 더 집중이 잘 될 때, 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글을 써야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이니 얼마든지 늦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글이 더 잘 써지는 시기나 시간이 있었나? 그 시간이 왔을 때 온전히 글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나?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부풀어오르는 생지처럼, 시간을 '끌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건지도 몰랐다. 호흡이 너무 길어지니 글쓰기가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글 10편을 완성해 브런치북 하나를 완성해보는 게 오랜 목표였는데, 이런 식이니 가능할리 없었다. 그러던 중 밀리의 서재와 브런치가 콜라보레이션으로 전자책 발간 프로젝트를 한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공지를 확인한 시점부터 약 5주간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면 <부재에 대하여>를 주제로 브런치북을 발행해 프로젝트에 응모할 수 있었다. 


 대충 쓴 글을 빠르게 발행하자는 건 아니었다. 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더 잘 쓸 수 있을 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글을 완성해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해보면 그동안 글 하나를 쓰는데 진짜 공을 들였던 건지, 아니면 그저 시간을 끌었던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시간 고대했던 결과물을 얻으면 늘어진 글쓰기에도 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브런치북 응모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간의 행동패턴은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는 결론도 얻었다. 글 하나를 발행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한 달에서 일주일 정도로 단축되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선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저 더 잘 쓰기 위한 시기를 기다리기 위해 밀리의 서재 응모를 미뤘다면, 브런치북도 발행하지 못했을 거고 이런 결론도 얻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무언가를 미룬다는 건 무언가를 '잃는다' 혹은 '더 많이 얻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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