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는 여행을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해방감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G를 대할 때 나의 모습과, 다른 이들을 대할 때 나의 모습 모두 나라는 걸 인정한다. 다른 이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감정을 G 앞에서 쉽게 드러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G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고,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G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성 문제를 잘 얘기하지 않고, 그 앞에서 굳이 욕쟁이 할머니가 되지도 않는다. 반대로, 여고 생활을 함께 한 고등학교 동창들과 있을 땐 쉽게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이성에 대한 고민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그럼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답은 간단하다. 흑화된 모습은 극소수의 사람들 앞에서만 노출하고, 가끔 화가 나면 욕쟁이 할머니가 되기도 하며, 고등학교 동창들과 이성 얘기를 하는 게 편한 사람. G를 대하는 모습, 고향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 회사 동료를 대하는 모습을 모두 더하면 그게 나라고 생각한다. G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게 오히려 어색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관계를 다져나갔을 뿐이다. 그와 달리 서로의 사춘기 시절을 잘 알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된소리가 섞인 말들을 해야 왠지 더 친밀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하는 것뿐이고.
'진짜 나'와 '가짜 나'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모두 모으면 그게 나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가장 먼저 찾아온 건 '해방감'이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필요없다는 해방감.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을 그만둬도 된다는 해방감. 이어서 스스로가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없는, 다채롭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쾌감도 있었다. 한편 G와의 관계는 또 다른 의미로 특별해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정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하는 피곤한 세상에, 서로의 신경질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줄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독보적인가. 그래서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거나,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따로 찾지 않는다. 그저 '짜증이 묻어도 되는 페르소나'를 가질 수 있게 해준 G에게 고마움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