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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May 17. 2021

멍청이의 쉬는 날

© cliquestudios, 출처 Unsplash

손끝에 감도는 온도가 서늘해졌다. 산책하기 딱 좋은 16도. 일요일의 끝에서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3시간을 걸었다. 주말을 마무리하는 산책은 무기력하게 흘려보낸 이틀을 붙잡아보고자 허덕이는 일이다. 그런 때가 있다. 세상일이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게 흘러갈 때, 아니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없어 흘러가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그래서 원치 않는 일로만 하루가 채워지는 날들. 근래의 날들은 무심하게 나를 빗겨 달아났다. 잡을 틈도 없이 쏜살같이.


집 앞 공원 폭포가 드디어 제 역할을 찾았다. 바싹 다가온 여름의 냄새를 쫓아 물은 맹렬히 아래로 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아. 물방울이 모여 만들어 내는 소리는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뻥하고 차 버린다. 아주 잠깐 웃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답답증은 자주 마음을 좀먹는다. 세상 소식을 차단하고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면 답답한 마음을 지우고 아주 잠깐 안락한 세계로 도피한다. 외면할수록 후에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짐을 알면서도 스스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따로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여지없이 방구석 피난처로 마음의 도피를 떠난다.


온전히 혼자만의 일상을 시작한 지는 1년이 되어간다. 룸메이트도 함께 사는 가족도 없이 오롯이 혼자 일상을 끌어가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든다. 새로 이사 온 뒤 부엌이 작아지면서 요리하는 시간이 줄었다. 자연히 장 볼 일도 줄고 집안일에 쓰는 시간도 줄었다. 공간도 줄어 청소할 일도 줄었다. 일은 줄었으나 마음은 좋지 않다. 집 안에서 마저도 통제권을 잃은 느낌이다. 좁은 공간에, 배달 음식에, 나의 무기력함에 연이어 패배하는 중이다.


홈트레이닝조차 하기 힘든 좁은 방, 작은 주방, 먼 통학 시간. 불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할 핑계는 많다. 더구나 나는 (애석하게도) 그 모든 제약을 뚫고 노력하는 열정맨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귀 팔랑이며 흔들리는 멍청이일 뿐이다. 멍청이는 주말이 주어지면 뒹굴거리며 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곤 일요일의 해가 그 모습을 감출 때가 돼서야 게을렀던 자신을 반성하며 집을 나선다. 무기력했던 주말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집 앞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생각했다. ‘시원한 마음이 갖고 싶다.’ 엉킨 실타래처럼 꽉 막힌 마음이 아니라, 쏟아지는 폭포처럼 시원한 마음. 무기력하게 누워 보내는 주말이 아닌 새로운 일상을 찾아 나서는 주말. 그런 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무 노력도 없이 철없이.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 변화를 잘 버무려 떠먹여 주길 기다리는 마음. 그만하자며 결별을 선언해도 이 녀석은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함께 놀자며 유혹한다. 그러면 그 하루는 또 후회로 끝난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일을 싫어하면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시간을 낭비한다.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없다. 이번 주말도 멍청하게 흘려보냈다. 멍청이는 멍청하지 않게 쉬는 날을 보내는 법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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