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빛이 빚어내는 풍경은 진하다. 당장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만큼 예쁜 빛깔이지만 정작 여름 햇빛 아래에 서면 타는 듯한 더위에 제 발로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겨우 해가 기우는 7시쯤 그나마 살만한 더위가 찾아오는 시간이 되면 그제야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가뜩이나 움직이기 버겁게 만드는 폭염에 코로나19가 또다시 기승이다. 어느새 일일 확진자가 1800명을 웃돈다. 코로나가 발병한 지 1년이 넘었다. 확진자 수에 둔감해진 지 오래지만 요즘은 다시 경계심이 고개를 든다. 미리 잡아둔 약속을 미루며 “코로나 끝나고 만나자”라고 이야기한다. 끝나지 않는 질병과 곧 끝나겠지만 괴로운 폭염에 갇혀버린 여름이다.
1년 전의 나는 갇혀버린 봄을 보냈다. 취준생이라는 명패를 달고 한창 시험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코로나19가 내가 살던 대구를 기점으로 기승을 부렸다. 처음 겪는 팬데믹 상황에 사람들은 패닉 했다. 시험은 줄줄이 취소되고 사람들 간의 만남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보자’는 기약 없는 말로 대체됐다. 안 그래도 금쪽같던 아르바이트 자리는 가뭄에 시냇물 마르듯 말라버렸다. 그야말로 갇혀버렸다! 다행히 당시엔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아침이면 엄마와 함께 산으로, 낮에는 언니와 함께 근처 공원으로 나다니며 짧게라도 숨통을 틔웠다. 봄볕도 자잘한 일탈을 용인해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왕좌왕하던 세상은 차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갔다. 취소됐던 시험들이 다시 열렸고 적게나마 아르바이트 공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나는 스스로 내 공간을 만들어 독립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과 겨울을 거쳐 다시 봄이 왔다.
새롭게 맞이한 봄은 눈코 뜰 새 없이 휘리릭 지나갔다. 서울의 벚나무들은 3월 말에 꽃을 피우는 기염을 토했고, 봄비는 사람들이 꽃을 보며 희희낙락대는 꼴을 질투라도 하듯 세차게 꽃나무를 때려댔다. 기어코 2주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꽃잎을 죄다 떨어뜨린 봄비는 이후에도 자주 심술을 부렸다. 특히 주말의 소중함을 친히 일깨워주려는 듯 주말마다 하늘을 희뿌옇게 물들이며 직장인들의 속을 긁어댔다. 그 심술궂은 봄에 나는 잡지교육원을 다녔다. 같은 일을 해나갈 동기들을 만났고 대학 이후 거의 마지막일 듯한 단체 수업을 들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월화수목금요일, 가끔은 토요일까지. 꽉꽉 채워 넣은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면서 첫 직장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찾아온 직장인으로서의 첫여름은 마스크와 폭염, 재택근무의 감옥이었다. 누가 알았나, 입사 두 달 차부터 갇혀버릴 줄이야. 이제 재택근무를 한 지 2주쯤 지났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이 줄었다고 좋아했지만 곧 혼자서 작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는 일이 지겹고 신물이 났다. 무엇보다 사람이 보고 싶었다. 화면 너머의 픽셀로 이루어진 사람 모양의 이미지나,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흉내 낸 디지털 신호가 아닌 진짜 사람! 가뜩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는 주제에 혼자 있길 좋아하는 이상한 혼종인 내겐 이 상황이 참 답답했다. 끊임없이 비어있는 시간을 친구, 부모님과의 통화, 메신저로 채웠지만 진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엔 견디고 견디다 못해 주말 약속을 잡았다. 자차를 소유한 드라이버 동생과 드라이브에 나섰다. 미술관 전시를 보려고 했으나 가득 몰린 인파 덕분에 오히려 더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게 됐다. 남산을 돌고, 지하철이 아닌 방법으로 동네에 왔다. 운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한껏 차오르던 날이었다. 다른 날에는 자취생이라는 특권을 맘껏 남용해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좁은 방이지만 방을 가득 채울 만큼 심심함과 무료함, 외로움이 커져 버려 이들을 밀어낼 새로운 존재가 필요했다. 2년 만에 만난 동생과는 동네 식당의 음식을 죄다 포장해와 돼지 파티를 벌였다. 면접을 보러 서울로 올라온 13년 지기 친구와는 두고 보기만 했던 동네의 베트남 식당에 갔다. 취업 스터디를 함께 했던 가닥을 살려 모의 면접을 보고 주야장천 묵혀 놓았던 근황 이야기들을 풀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새로운 느낌으로 채워졌다.
동네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꼭 데려가는 곳이 있다. 경춘선 철길공원. 옛 기차가 다녔던 철길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다. 사시사철 계절꽃이 피어있는 곳. 계절마다 분명 꽃을 바꿔 심는 듯한데 평일 낮 시간엔 이 길을 따라 걷질 않으니, 지나간 꽃과 앞으로 필 꽃이 자리를 바꾸는 풍경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저녁 시간 누군가 고이 만들어놓은 풍경을 잠시 눈에 담을 뿐이다. 혼자서 이 길을 걸을 때면 보통 화랑대역 쪽으로 향한다. 그리곤 철길을 벗어나 그 옆에 흐르는 묵동천으로 내달린다. 러닝이다. 아기자기한 맛은 없지만 널찍하고 쾌적하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걸을 때만 공릉역 쪽으로 방향을 튼다. 평소 다니는 방향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아기자기한 꽃과 벤치, 여러 수종의 나무가 기찻길과 어우러져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신선함이 묻어난다. 친구가 놀러 와 잔뜩 신난 내 마음 같다. 늘 비슷하게 일상을 보내는 곳이 누군가의 등장만으로 한껏 새로워질 수 있구나 느끼는 요즘이다. 보지 못했던 풍경, 놓치고 있던 장소의 감각이 켜켜이 살아난다. 갇혀있는 여름, 더위와 마스크와 코로나에 치여 답답한 마음에 크게 창문이 만들어졌다. 뜻뜨미지근한 여름 바람이 그 창문을 통해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에어컨 바람만큼 시원하진 않아도 이 미지근한 자연 바람이 이상하게도 소중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