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아 치악산으로 온 명랑 할매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음~~초음파로 봐도 딱 암입니다.
...
내가 암이라구요???"
2022년 5월23일 나는 청천벽력 같은 말 을 들었다.
"암?? 내가 암이라고? 아닐 거야."
수용 할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묻고 또 물었다 내가 암이라구요? 그렇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잠시 나의 뇌는 블랙아웃의 상태 가 되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순간 하늘거리는 하얀색 블라우스 위로 나의 암덩어리가 보이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블라우스 위로 두손을 가리며 병원 밖에 나무에 기대어 주르륵 미끌어져 바닥에 주저않고 말았다. 그 순간 내눈에서는 뜨끈뜨끈한 눈물이 볼을타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와 내입속으로 짭쪼름한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내렸다.
억울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살아 왔는데 이제와서 암이라니 억울함과 분노는 여러날 "억울해" 와 "아니 괜찮아 소영아" 를 핑퐁이 왔다갔다 하듯이 나의 뇌가 두개인듯 왔다갔다 하며 나를 불안 하게했다. 그러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미국유방암 에 대한 논문을 보다보니 '운 이없어서'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의 나는 어디서든 누구에게서든 위로가 필요했다. 너무 슬펐다. 하지만 다행히 임파절로 전이가 되지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병기가 궁금했다 병기는 내 가슴 뚜껑을 열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였다. 수술 전에 검사를 하는데 패스트랙 방법으로 12가지 검사를 하루에 모두 마치는 검사였다. 하루에 검사를 다 받는일을 너무 힘들고 지쳐 쓰러질것 같았다. 말이 많지 않은 내 딸 유나는 검사지를 들고 나를 이곳저곳 으로 데리고 다니며 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며 모든검사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묵묵히 애써줬다.
2022년 7월 4일 수술.
멀쩡한 내가 휠체어 에 앉아 이끌림을 당하며 수술실 앞에 대기하고 있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냥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내 딸 유나는 "왜 울어 엄마~ 한숨자고 눈뜨면 다 끝나 있을거야. 오빠랑 통화 하고 있을께.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가요~" 하며 위로해 주었다.
수술실 이라 쓰여진 빨강색 등 은 나를 공포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수술을 마치고 보니 1.8cm였고 다행히 전이가 되지 않은 상태지만 나에게 있던 암세포는 뾰족뾰족한 모양을 가진 성질이 별로 좋지않은 종류라고 말씀하셨다.
약물 항암을 결정해야 하는데 조직을 떼어 미국으로 보내면 결과가 3주후에 온다고 했다.
반대로 담당교수님께 여쭈어 보았다. "제가 약물 항암을 해야 하는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교수님께서는 생각하세요" 라고 여쭈었더니 70~80%는 안 해도 될 듯 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약물 항암치료 는 하지 않겠다고 말씀 드리고 방사선 치료를 한달 하기로 결정이 났다. 아팠던 수술의 기억은 지금 나지도 않는다. 혹이 떨어져 나갔다는 기쁨이 커서 였던지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특성상 재발을 잘 일으키는 종류의 암이다보니 재발 방지하는약, 내 몸의 여성호르몬을 완전히 차단 시키는 약 '타목시펜' 이라는 콩알 반쪽만한 그 약의 위력은 대단했다. 호르몬을 다 차단시키니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뼈 마디마디는 100살쯤되면 이럴거야 할 정도이고 통증은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하고 말았다. 이후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아이고" 소리는 입에 달고 있었고, 손과 발은 뼈 통증과 함께 저리고 시리고...얼음위 에 맨발로 서있는 것 같이 시렸다. 잇몸까지 욱신거리고 들떠서 음식을 씹을 수 도 없고 헛바닥은 찐한초록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해 있었다. 입술은 7개월 내내 물집이 생겨 쿤타킨테 를 방불케하며 수포로 물집이 계속 생겼다.
수술하러 입원
약물 부작용
집에는 어느 사이 내 몸을 돌봐줘야 할 보조 기구들로 넘쳐났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살 충동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살아있는 삶은 삶이 아니다. 이런 통증을 가지고 약 먹어야 하는 10년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엄습해온 것이다. 검사 결과를 보기로 한 날 그동안 몸의 증상을 꼼꼼히 메모해 둔것을 보여드렸더니 상태가 너무 심하니 6개월 정도 끊어보자고 하시며 정신건강학과로 연계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약을 안먹으니 식습관에 더욱 신경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된 계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습관이 되어 잘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해마다 년 말에는 종합검진을 받았기 때문에 가슴에 이상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콜레스테롤과 당화혈색소가 높았고 헬리코박터균이 죽지 않아 독한 항생제도 3차까지 먹었다. 피부는 알수없는 가려움증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뿐인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찾아오는 위경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만큼 아팠다.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면 급히 병원에 실려가서 진경제를 맞아야만 통증이 가라앉는 그런 날들을 수십년 동안 뚜렷한 이유도 모르면서 아프면 당연히 병원 가서 주사맞고 더 열심히 건강식품을 챙겨 먹었다.
수술전 날 까지 한달 가까운 시간을 수술 전부터 지금까지 건강관련 서적을 읽으며 외국과 한국의 자연치유학에 대한 서적을 100권도 넘게 읽게 되었다. 건강과 관련된 모든 유명 서적을 읽으면서 나의 식습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되었다. 나는 이 책들을 많이 읽고 입원한 상태여서 퇴원하면 천연식습관으로 내 건강도 지키고, 암도 극복해 나가리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는 지금 675일째! 지금까지 나에게는 상상도 못할 변화들이 일어났다.
내가 읽은 건강 관련 서적
나의 비법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다. 요리하느라 시간도 들지 않는다. 깨끗이 씻어 채소 과일 샐러드와 주스형태로 갈아먹기 시작한 것이 2022년 7월 5일 부터 지금 까지다. 나에게 칭찬 해주고 싶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아침 식단을 빠짐없이 실천한 것을 장하다고 말이다.
이제는 나의 아침 루틴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되었다. 아주 평범한 식재료가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요리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어서, 브런치에 나의 마음을 정성껏 한 보따리 풀어놓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암으로 인해 나는 나의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었고, 내 인생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나는 암에 걸렸었지만, 다시 태어났다.
예전 암 걸리기 전에는 보통사람들처럼 인스턴트와 배달음식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너무잘먹는다는 표현을 사람들이 할 만큼 음식을 좋아했다. 또 눈을 돌려보면 입에 짝짝 달라붙을 만큼 맛난 음식들의 천국이 아닌가?
음식을 내 입맛이 원하는 대로 입에 넣었으며 음식이 왜 맛있는지? 어떤 가공물이 들어가서 이리도 맛을 내는지 생각없이 마구먹어왔던 지난 날이다.
그러나 암수술 후 나는 바로 식습관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어렵지 않게 실천 계획을 짰다.
아침에 눈뜨면 밤사이 입안에 있는 세균을 제일 먼저 청소하기 위해 입안을 헹군다. 아침 처음 입에서 내려보내는 음식물을 청결하게 내 몸속으로 보낸다.
수술이후 675일동안 나 스스로 결심한 것을 지금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으로 나는 60대임에도 40대같다는 말을 듣고, 누구보다 활력이 넘친다. 그 중 3가지를 공개한다.
첫번째, 질 좋은 수면이다.
건강한 사람도 그렇지만, 환자인 나는 더욱 수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질 좋은 수면을 못하면 면역력 저하로 이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새벽 5시에 눈을 뜬다. 눈을 뜨면 먼저 새로운 아침을 선물 받은 하루에 감사하며 일어나서 한 시간 반동안 아침 공부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한다. 근력 운동과 요가와 아우토겐 명상을 한다.
두 번째, 운동이다.
유산소 운동은 걷기 8천보에서 만 보는 꼭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 아침 햇살에 담긴 세로토닌 햇빛 샤워는 나의 뇌와 정신 육체를 편안하게 이끌어준다. 근력 운동은 처음 배울 때 온몸이 타들어 가듯 아팠지만 지금은 스쾃 100개는 거뜬히 한다.
세 번째, 평범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흔하디 흔한 채소 과일 아침식사이다.
채소 과일 식사를 한지도 675일, 675일이 나에게 가져다 준 변화를 글로 자랑하고 싶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채소 과일식 레시피를 공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 이사 오기전 에는 여기서. 누가 60대로 볼까?
다리 근력운동 스트레칭
요가
매일 명상
치악산 이사 후 산책로 따라 걷기
꿈을 찾아 치악산으로 온 명랑할매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아침 첫 음식은 음양탕(백탕)이라 부르는 뜨거운 물과 찬물을 7:3비율로 섞어서 아침 5시에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따뜻함이 목을 타고 통과할 때 깨끗하고, 따뜻한 온천 할 때의 느낌을 마실때마다 느낀다.
아침에 분주함을 떨기 싫어 전날 식초에 담가 깨끗이 씻어 실온에 둔 채소 과일을 믹서에 갈아주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정해진 채소 과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믹서기에 갈아서 과채 스무디 주스를 만든다. (냉장고 안에 찬 음식은 피하므로 냉장고 에 있는 음식은 먹기 몇시간전에 꺼내 놓는다) 이것이 전부다. 스무디처럼 되면 입안에 천연효소 침, 아밀라아제가 잘 섞이도록 천천히 같이 씹을 토핑을 올리고, 저울에 올려 용기 무게를 빼고 600g 정도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천천히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주로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상추, 오이, 파프리카, 냉동 블루베리 등 야채종류는 다 쓴다. 토핑으로는 병아리콩,
렌틸콩, 아마씨, 갈지 않은 블루베리, 사과 등을 믹서기에 갈려나온 스무디 주스 위에 토핑으로 올려 꼭꼭 씹어 먹는다. 맛이 너무좋다.
과채 스무디 주스 (내가 만든 이름)말고 샐러드로 먹고 싶을때는 가공된 드레싱은 뿌리지 않고 순수한 채소 과일 그 자체로 먹는데 참고급진 맛이다
명랑할매 레시피
이렇게 먹기를 빠지지 않고 한 결과 나는 점점 더 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거울을 봐도 예뻐졌다. 일단 피부가 맑고 투명해졌다. 아프기 전 나의 직업은 건강기능식품제조사 대표였다. 건강을 잃고 난 후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회사를 매각하고 모든 비즈니스를 정리한 후 서울 집은 그대로 두고 나의 건강과 나의 꿈을 찾아서 12년전 지어놓은 치악산 집으로 내려온지 2달째이다. 예전에 나의 꿈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보니 책 읽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며 교내 백일장이나 매거진에 글을 보내면 입상을 자주 하곤 했던 그래서 작가를 꿈꾸던 그 오래된 꿈을 여기에서 찾았다.
치악산 집은 카페, 글램핑, 펜션을 관리인께서 하시다 내가 내려오면서 사위가 사장을 한다. 카페가 바쁘다 하면 잠시 내려가서 살짝 도와 주고 있노라면 손님들은 사위와 내가 부부인줄 아신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40대로 봐주시니 나는 정말 좋은데 반대로 사위는 슬프다 한다. "내가 늙어 보이나" 갸우뚱하며 겸연쩍어 한다.
나의 젊음의 비결은 앞에서 언급한 채소 과일 식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더 감사한 것은 온몸이
종합병원이었던 내가 요즘 제일 건강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위경련이 사라진지도 1년 반이 넘었고, 피부 가려움증도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다. 몸이 편안해지니까 원래도 긍정적이었던 나는 지금은 더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다. 내가 선택한 채소 과일식사 (과채 스무디 주스)한잔은 놀랍도록 나를 변화시켜 주었다.
참고로 나는 162cm, 45kg이다.
수술전에는 53Kg이었다. 체중은 서서히 줄어 지금은 줄지도 늘지도 않지만 어느때 보다 활력이 넘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의 외국인 며느리는 나를 소개할때 "우리 어머니는 자연산 이예요" 해서 한바탕 웃곤 한다.
채소 과일 식사 덕분에 건강을 되찾고 나서 나는 가끔 내가 암 환자라는 것을 잊고산다.
오늘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
앞으로 내가 건강하게 먹고 있는 건강 레시피와 꿈을 찾아온 치악산의 이야기를 브런치를 통해 전해 보려한다.
치악산 집 나의마음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