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 11화
디자이너. 이제 어딜 가나 디자이너라고 나를 소개한다. 내 명함에도, 명확하게 그렇게 적혀있다. 새삼 디자인과는 평생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설계가 하기 싫을 때마다 글을 썼다. 내 이야기와 심정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계는 그만큼 지루했고,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방법도 몰랐다. 사실 흥미가 없어서 그 방법을 알아볼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저 설계를 하지 않을지만 고민했다.
그렇게 그것을 버리고 온 것이 디자인이라니.
시각적으로 무언가 표현하고, 보기 좋게 만드는 것에 재주가 없다고 평생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누구보다 센스 있고, 보기 좋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다.
매번 들어오는 전시들의 키비주얼 (메인 홍보자료가 되는 포스터 같은 것이다.)을 만들어냈다. 매번 프로젝트가 들어올 때마다 하고 싶은 디자인들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뭔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졌다.
여러 포스터와 홍보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디스플레이도 열심히 따라다녔다. 뭐가 뭔지, 무슨 그림이 예쁜지, 어떤 게 관람하기에 좋은 높이인지를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여러 포스터들과 리플렛, 엽서, 스티커 등을 만들면서 내 손으로 만든 것을 직접 보는 일이 좋았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점점 더 나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 좋았다. (실제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지는 스스로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그전보다는 피드백도 덜 받고,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것들이 전시장 곳곳에 걸려있고, 커다란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이름 있는 브랜드의 홍보물로 나간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1년 만에 이렇게 새로운 흥미로운 일을 찾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설계를 하지 않더라도, 건축학과를 나와서, 건축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증명하고 싶었다.
모두가 설계를 포기할 때, 말렸다. 아깝다고 했다. 그런 시선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건축학과를 나와서 설계를 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계를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저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매번 새로운 디자인 시도들을 하면서 또 다른, 완전히 새로운 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