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포기한다고 삶은 망하지 않으니까

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 12화

by 푸른


디자인 매거진. 요즘 인스타그램을 보면, 매거진 계정들이 넘쳐난다. 그런 계정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직 배우는 단계인 내가, 눈에 띄는 디자인을 해서 팔로워를 늘릴 수 있을까.

이런 막막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들을 가지고 무작정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를 만들었다.

영화나 전시, 책 등 모든 예술 분야를 다루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팔로워수가 급증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은 뭐든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작은 계정이지만, 매번 표지를 만들 때마다 신경을 쏟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눌러볼까.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다룰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좋아하던 영화들과 책을 이용하기도 하고, 흥미로운 주제거리를 찾아 항상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


https://www.instagram.com/sig.nature___?igsh=MXJrbmN1Mjl6MDdhNQ%3D%3D&utm_source=qr

(*위의 링크에서 더 많은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첫 입사를 한 지 16개월째. 불과 1년 반 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디자인을 하는 내내 어려운 것은 여전하다. 아직도 내 시안을 제출했을 때 별로라고 생각할까 봐 두렵다. 하지만, 그 과정이 즐겁고, 내가 낸 결과물들이 전시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꽤 보람이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렇듯 지금의 나는, 건축학과를 나온 사람이 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건축학과를 나와서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나온 대학에서는 거의 없다. 설계사무소에 취업해 설계를 해서 건축사를 따는 것만이 맞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지방대 건축학과. 그런 삶이 겉으로는 성공한 삶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괜찮다. 5년 내내 과제와 설계과목에 맞춰진 수업들을 듣다 보면, 마치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모두가 5년 내도록 설계 과제 때문에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허덕이니까.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살다 보면 20대 초반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게 인생의 전부인 줄 알게 되고, 힘들지만 익숙해져 버린 설계를 하는 삶이 맞는 길이라고 결론 내리기 마련이다.


그건 정답이 아니다. 설계가 하기 싫거나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지금 나처럼 글을 쓰면 된다. 스케치업 대신 블로그와 일러스트레이터를 켜면 된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5년이라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건축학과를 선택한 것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그 5년간의 설계 과제와 수업들이 끔찍이도 싫었지만, 그로 인해 배운 것이 훨씬 많다는 것. 내가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것. 전시장 공간을 남들보다 빠르게 이해하고, 3d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것. 전시장 도면을 읽는 것. 전시장의 전기 설비와 조명도면을 읽을 수 있는 것. 이 폭이 답답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건축학과를 나왔기에 가질 수 있었던 능력이므로.


나는 앞으로도 설계를 쭉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설계를 버리는 선택을 했던 순간을 뒤돌아 볼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버렸기 때문이고, 그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이었든 설계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지 않은가.


세상엔 정말 많은 재미난 일과 나에게 맞는 일들이 많다. 그러니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 말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두렵지만, 설레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