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이제 추석을 지나면서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멀리 중동 지역은 잠잠하던 시기가 지나고 분쟁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 영향을 떠나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웃으며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 생존을 위해 버텨야 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시간까지 포함하여 금융시장은 칼같이 돌아가고, 가격은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냉혈한 같이 그곳에서 발생할 대미지와 그 영향의 평가, 앞으로의 전개 시나리오를 축약해서 가격에 반영해 봅니다. 그러한 평가와 영향 중에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시장입니다.
원유는 발견 이래 화학의 발전으로 안 쓰이는 분야가 없게 됨에 따라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원자재였습니다. 자연스레 원유 가격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배럴당 $120 수준으로 올라갔다가, 2년 뒤 50% 가까이 추락했다가, 다시 $100 근처로 스멀스멀 올라가서 전 세계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유의 가격은 세계 경제에, 그리고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데요, 이 원유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전부터 흘러 온 역사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요인이 있어 왔지만, 현재 가장 큰 요인은 OPEC의 공급량 결정입니다.
The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소위 OPEC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원유 생산량의 비중에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38%가 OPEC 회원국의 생산량입니다. 또한 원유 생산 국가 Top 10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 수준을 차지하는데, 그중 40%가 OPEC 회원국입니다. 그중 대장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약 13%로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방문해서 재계 총수들을 면접 대기자처럼 만들어 버린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세계 최강 미국과 자존심 싸움을 펼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죠.
OPEC 회원국들의 특징은 이름에서 나와있다시피,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입니다. OPEC+를 제외한 OPEC 외의 원유 생산 국가들을 보자면 대체로 자체 소비도 많습니다. 전 세계 원유 생산량 1위 미국은 전 세계 원유 소비량 1위 이기도 합니다. 생산량 4위 캐나다도 소비 순위 7위입니다. 생산량 6위인 중국은 소비 순위 2위로 생산량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입을 해야 합니다. 사우디를 제외한 OPEC 국가 중 2022년 소비 순위 Top 10에 들어간 국가는 없습니다. OPEC 국가 중 생산량 상위권 국가는 모두 중동 국가입니다. 중동 국가가 기름 때문에 부자라는 사실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실제 숫자에 기반한 팩트는 이 정도입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죠. 이 숫자들이 OPEC에게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출처 : Port Economics, Management and Policy]
이들 중동산 원유를 주로 사주는 곳은 물론 전 세계에 있겠지만, 주로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동아시아가 주요 고객인 이유는 그곳의 원유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품질에 따른 요인도 있습니다. 중동산 원유는 중질유로 분류되는데 본래 가격이 경질유보다 저렴합니다.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이를 실어와서 고도화된 설비를 통해서 상품을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 방식이 정착되었습니다. 유럽은 경질유인 북해산 브렌트유가 좀 비싸지만 운송비 감안하면 쓸만하고, 중질유는 북아프리카에서 실어오는 게 중동산 보다는 좀 싸겠네요. 물론 그래도 더 필요하니 미국, 중동에서 많이 사 오기는 합니다만. 미국은 자체적으로 많이 생산하고, 얘네가 필요한 건 중질유보다는 경질유인데, 이게 셰일가스에서 나오네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유가는 변동 됩니다만, 주요 수입국인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 수요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천연가스는 어떨까요? 보관하고 운반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활용도가 높아진 천연가스는 원유 시장하고는 조금 양상이 다릅니다. OPEC 같은 기구가 없고, 주요 생산국이 넓게 퍼져 있습니다. 러시아만 제외하고 말이죠.
천연가스는 일단 주요 수요처를 봐야 합니다. 미국 EIA에서 얻은 5개년 자료의 평균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순수입량 기준으로 1위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생산량이 4위인데도, 소비량이 3위라 순수입국입니다. 수입량 2위는 일본입니다. 동아시아권이 수입국 1, 2위를 기록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이 수입국 6위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요 수입처 중 하나는 동아시아권입니다. 이건 원유랑 동일하죠.
순수입국 3위는 독일입니다. 생산 순위에도 없습니다. 다 수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순수입국 4위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7위가 튀르키예, 8위가 프랑스, 9위가 영국, 10위가 스페인입니다. 주요 수입처 2위는 유럽입니다. 이것도 원유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 수출국가를 볼까요. 수출 1위는 러시아입니다. 이는 유럽의 수요 확대, 특히 독일의 성장과 맞물려 있습니다.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독일에서 싸게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대상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안성맞춤이었죠. 상대가 러시아라는 것을 빼면 말이죠. 수출 2위는 카타르입니다. 카타르의 소비량은 20위권 안에 없습니다. 생산하는 대로 수출하는 형국입니다. 수출 3위는 노르웨이입니다. 역시 소비량이 별로 없습니다. 수출량 4위는 호주입니다. 소비량이 20위 수준인데, 생산량이 7위입니다. 주요 생산국 중 하나네요. 그리고 그다음 수출국이 미국입니다. 소비량 부동의 1위 입니다만, 생산량 역시 부동의 1위입니다. 정말 미국은 축복받은 나라인가 싶습니다.
수출 1위인 러시아는 주요 수출 방법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유럽으로 보내는 것이었죠.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 루트가 막혀 버렸습니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출 대상국이 중국 정도로 줄어들어버렸습니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출은 노르웨이 방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 2위 카타르는 액화천연가스, 즉 LNG로 만들어서 배에 실어서 수출합니다. 이 물량이 주로 아시아로 향합니다. 페르시아 만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동아시아로 향하는 루트가 원유랑 같습니다. 그리고 호주도 LNG 수출입니다. 미국은 국내에서는 파이프라인을 거치지만, 해외 수출은 LNG입니다.
천연가스는 원유보다 중동의 의존도가 현저히 낮았습니다. 카타르와 이란에 대규모 가스 필드가 존재하고 생산량도 많지만, 그래도 원유보다는 생산지의 분포가 다양한 편입니다. 그래서 시장도 나름 적절하게 분할되어 있었죠. 미국/러시아는 유럽에, 중동/호주는 아시아에 주요 고객을 나눠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장에 두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앞서 얘기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을 주요 고객이 안 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확 줄어들고, 반대로 LNG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버렸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일정 부분 유지될 것 같습니다. 덕분에 LNG로 만들어서 파는 중동, 호주, 미국산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늘었으니, 이들 생산국이 좋겠네요. 그런데 두 번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천연가스 수출량 확대입니다.
이스라엘은 2009년 전까지 천연자원이 나지 않는, 자원 수입국이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부터 대규모 가스전이 해양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최대 가스전인 Leviathan 가스전부터 Tamar, Karish 가스전 등에서 2013년대부터 상업적 생산을 시작,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리하여 2022년에는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 15위를 기록하는 엄청난 성장세를 이뤘습니다. 이스라엘의 천연가스는 이집트의 LNG 시설을 거쳐 유럽으로 수출됩니다. 그리스, 터키로의 파이프라인 건설도 논의되고 있죠. 유럽의 LNG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매우 시의적절한 생산 확대입니다. 다른 기존의 LNG 생산국들, 특히 러시아가 퇴출되면서 유럽 고객을 확대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미국에게는 그리 좋은 소식은 안 되겠네요. 그래도 중동 지역의 몇 안 되는 미국의 우방 이스라엘입니다.
원유도, 천연가스도 지금은 중동산이 대세이긴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주요 생산자가 좀 다르죠. 지중해 쪽인지, 페르시아만 쪽인지에 따라 좀 다릅니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지만, 페르시아 만은 유럽으로 가기 위해선 이란이 키를 쥐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아덴만으로 유명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 수에즈 운하로 연결됩니다. 지중해쪽은 그냥 바로 유럽행이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천연가스 생산국인 이스라엘에 일단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유럽 가스가격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이슈죠. 원유 또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최대 관건인 이란의 개입여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만에 하나, 사태가 악화되더라도, 이론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지 않으면 원유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사태가 확산되지 않아도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원유 가격에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수요자 측면도 좀 영향을 미칩니다. 원유의 최대 수요자 중국의 경제의 둔화 우려가 이어지고 있죠. 반면에 천연가스는 슬슬 히팅 시즌으로 들어가면서 계절적으로 수요가 늘어나야 할 때입니다. 비록 온난화 때문에 예상보다는 적을 수 있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니까요.
이렇든 저렇든 경제적인 이유에서는 전쟁이 조용히, 빨리 마무리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미 금리로 체력이 많이 깎인 마당에 원자재 가격발 충격까지 온다면, 생각 외의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말이죠.
이번에는 대외적인 충격에서 나타난 원유시장과 천연가스 시장에서의 가격 차이에 대해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좀 더 평화적인 이슈로 다시 얘기 나누길 기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