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채식주의자' 책이 있다니.
희한하네.
우리 집에는 책이 별로 없다. 거의 없다. 이유가 있다. 나는 한번 본 책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를 해서 책꽂이가 텅 비어 있었다.
미니멀리스트 흉내라도 내려고 잘 버리는 편이다.
어제 셋째가 넌지시 와서 그런다.
"엄마. 노벨상이 대단한 거야?"
문학적인 것, 책에는 전혀, 네버 관심 없는 셋째다. 또 뭔 시크한 소리를 하려나 사춘기에 대한 벽을 치고 있던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전 세계에서 한 명 주는 거니까 대단한 거지."
셋째가 곧바로 말을 이어간다.
"그럼 그 한강 작가가 대단한 거야? 우리 집에 한강 작가 책, 있는데."
스무고개 하듯이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셋째다.
"뭐? 한강 작가 책이 있다고?"
절대로 우리 집에 있을 리 없다. 문학적인 거랑 상관없는 집구석에 그 유명한 한강작가 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나를 놀리려고 그러는 줄 알고 의심하면서 질문한다.
"제목이 뭔데?"
"채식주의자"
"엥? 진짜야? 그 채식주의자가 그거 맞아?"
나는 그때까지 수채화나 그리며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셋째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 작가 꺼 진짜 맞아?"
"응. 마저 한강 채식주의자"
나는 셋째를 키우며 책을 한자라도 읽는 것을 못 봤다. 어째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도통 책에는 관심이 없던 애다. 최근 들어 소설에 관심이 생겼다고 가끔씩 책을 사달라고 서점에 가기 시작했다.
책 제목도 뭔 이상한 것들을 잔뜩 사길 래 마뜩지 않아했었다. 그래도 어쨌든 뭐라도 읽는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원하는 책을 잘 사주었었다.
참 희한하다. 책도 별로 없는 집에 무려 한강 작가 책이라니. 노벨상 탄 작가라니 호기심이 생겨 한번 읽어볼래도 구할 수 없었던 책이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신기했다. 그나저나 셋째가 그 책을 읽어봤는지 궁금했다. 안 읽었을 것 같은데... 책을 잔뜩 사 와서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야. 너 그 책 내용 뭔지 알아?"
셋째는 대충 솰라 솰라 이야기한다. 나도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는데 읽긴 읽었나 보다.
"야. 엄마 그 책 읽고 싶었는데 엄마 읽어도 돼?"
쉽게 줄 셋째가 아니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아. 나 뒷부분 다 읽고 엄마 읽어. 나 다 읽으면 읽어. 지금 가져가지 마."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쉽게 가져가라고 할리 없지.
셋째는 유명해지기 전에 책을 사놓아서 다행이라고 좋아한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한강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