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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Dec 21. 2024

쉰세 살 대학교 일 학년이 되다.

내년에는 이학년

쉰세 살 쉰세 살 오십삼

이 나이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어쩌다 입학하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요란하지도 시끄럽지도 않게 물 흐르듯이 꿈꾸듯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나는 대학을 가고 싶었다. 대단한 학문에 대한 뜻보다는 고졸로 마무리되는 삶이 마땅치 않았다. 왠지 나에게 더할 힘이  남은 것도 같고, 마음속에 꿈틀대는 이상한 놈 때문에 매일을 앓아야 했다.


무언가 가슴속에 아직 하지 못한 숙제가 있는 것처럼 매일 간지럽게 꿈틀대는 그놈.


강의 첫날 비로소 알았다.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 그것이 무슨 공부이든 간에 그냥 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이룬 것만 같은 충만함을 느꼈다.


매슬로우가 말했던 5가지 욕구 중에 맨 꼭대기 자아실현의 욕구에 드디어 발을 디딘 것이다.


내 새끼를 낳을 때나 내 집을 마련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충만함. 나를 위한 시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시간이 허락된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가정에 희생해야 했기에. 미루고 미뤄두었던 내 삶의 버킷리스트...


우리 대학교(이제 우리 대학교라는 말이 자연스럽다)는 만학도와 늦깎이 대학생 과정이 있다. 성인학습자 과정이라고 한다. 보통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에 토요일에 공부를 한다. 그래서 토요일 학교 운동장에는 어마어마한 자동차가 주차를 한다. 정말 어마어마하다. 주차요원도 정말 많다.


다들 무거운 책가방 등 각자의 짐을 가지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 장관이 따로 없다. 나이 지긋하신 4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신 분들이다. 다들 세상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오신다. 얼굴에는 기대와 생기가 가득하다. 이분들이 모두 인생 2 막을 열기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 오신다.


나는 어려서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의실에서다. 교수님 강의하실 때 얼마나 집중하고 열심히 듣고 대답도 잘하는지 나이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십 대의 청년들이다. 물론 다들 강의를 듣고 나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한탄하지만 강의시간에 교수님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듣고 답하는 모습들에 감동을 받고 마음에 채찍질이 된다.


그래서 누구나 쉬는 토요일에 늦잠도 포기하고 일찍 일어나 가족들 먹을 것도 준비해 놓고. 내 도시락도 싼다.


교실에서 학우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서로 친해지는 시간이니 좋다.


나는 원래 엄마가 된 후로 토요일이 제일 싫었다. 주말 육아의 시작이고 이래저래 주말은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 일을 많이 하니까 토요일이 제일 싫었는데 이제는 토요일이 제일 기다려진다. 나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그 시간이 귀하고 행복하다.


언젠가 꿈을 꾼 적이 있다. 선명해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꿈이다. 내가 어느 대학교에 들어가서 약간 지대가 높은 건물에 위치한 곳에 걸어가고 있었다. 아래에는 운동장이 있어서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거다. 꿈이지만 내가 대학교에 입학을 했나. 생각했다. 아직도 그 건물의 위치와 운동장이 선명해서 나중에 내가 대학을 들어가려나. 미리 본 걸까 생각한 적이 있더랬다.


캠퍼스를 다니며 꿈에서 본 곳이랑 건물 위치가 비슷한 것 같다. 몇년 전 캘리그래피를 배울 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요즘 공부하러 강의실 같 때 자꾸 꿈속의 데자뷔 같은 생각이 든다.


토요일의 캠퍼스의 공기는 정말 다르다. 살아있고 활기차고 아름답다.


너무 열심히도 말고 지치지도 말고 완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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