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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빠를 사랑해?

by 필력

왜 내 삶은 시트콤이 아니라 비극이어야 할까?

늘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긴장의 연속인지 모르겠다.


며칠 전 사춘기 아이와 소통의 대화를 하게 됐다.

"왜 우리 집은 다른 집이랑 달라? 아빠 엄마가 하나도 안 친해. 같이 여행 가거나 둘이 뭐 하는 거를 못 봤어. 엄마는 맨날 다른 사람이랑 의논하고. 가족일을 왜 다른 사람이랑 의논해?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

아이는 문득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우리는 잘 싸우지 않고 이렇게 쭉 28년 동안 살았으니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늘 그렇게 살고 있으니 문제가 문제인 것도 모르고 세월이 가고 있었다.

객관적인 아이의 시선에 다른 집 부부와 달랐던 것이다.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 부부가 그런 줄은..

당황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라는 질문 말이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거짓말로라도 대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니, 아이의 정서를 위해 마음에 없어도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데 나오지 않았다.

그럼 나는 왜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저 "정이 있지. 안타까운 안쓰러움이 있지. 그런데..."

브레이크에 걸린 것처럼 말이 끼익 끼익 멈춘다.

선뜻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한참을 솔직한 어떤 아무 말을 꺼내놓으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으.. 으.. 으, "하고 어린아이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잃었을 때 반쯤 포기한 상태의 울음처럼 막을 수 없는 어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 당황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그저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라는 질문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어린아이가 돼서 "으. 으윽"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한참을 그랬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남편이 상처 줬던 지난 기억이 훅 하고 가슴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그리곤 나의 입 밖에 나온 소리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미워하고 있는 것 같아."


아주 가장 솔직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답이었다.

나는 남편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나의 미움은 덮어두고 섣불리 봉합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왜 밉지? 그 순간 내가 남편에게 가장 상처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은 둘째 임신막달쯤 오락도박에 돈을 탕진하고 가출을 했었다. 직장도 갑자기 그만두고 가출을 했었다. 이십여 일이 되기 전에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배신, 절망, 고통, 슬픔의 총 집합체였다. 남편이 또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니 나는 용서하고 질책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나의 상처를 상처 안 받은 일로 분류하고 마음속 저 뒤에 꽁꽁 감춰뒀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의 일이 갑자기 지금, 뜬금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 외의 남편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끌어올려졌다.


그랬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괜찮다고 덮어두고 살았지만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을 사랑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상처를 덮었던 것이다.


그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왜 내가 남편이랑 있는 게 싫었는지. 왜 남편이랑 모든 것을 의논하는 게 싫었는지.


나는 여전히 남편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또 떠날까 봐. 또 나를 힘들게 할까 봐.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하나도 이쁘지 않은데 이쁜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남편이 나를 아무리 좋아하고 잘해줘도 호응을 못했던 것이다.


무시하고 괄시하고 구박했다.


그러다 또 힘을 내서 잘해줬다. 가정이 무너질까 봐 힘을 내서 잘해줬다.


남편은 내가 지나치게 화를 낼 때 영문을 모르고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또 바보같이 굴 거니까라고 말하며 배제했는데 거기엔 미움과 불신이 뿌리 깊게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다. 남편을 미워하는 줄은..

아이의,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라는 질문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미워했고 미워하고 미워한 것이다. 사부작사부작 쪼끔 쪼끔씩 복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을 지키는 선에서 딱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정을 준 것이다.


나도 몰랐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이다.


남편도 억울했겠다. 오랜 시간 무시를 당했다. 나에게..

남편이 백가지를 잘해줘도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와 이야기한 다음 날 토요일 남편이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학교에 등교해야 해서 바쁜 시간이었다. 나는 글을 쓰며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남편에게 다가가지 않았던 나를 발견했었다.


원래라면 머리 아픈 남편을 향해 "약 먹어"라고 한마디 하거나. "오늘 일 나 가지 말고 쉬어"라고만 얘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삐 등교했을 것이다.


나는 현관으로 나가려던 발길을 돌려 소파의 남편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고 만져주었다.


"열나네."

약을 챙겨 식탁에 놓고 꼭 먹으라고 당부하고 나갔다.


오후에 전화해 보니 남편이 이제 머리가 안 아프다고 한다.


나는 원래 전화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제야 내가 왜 가족이랑 있을 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었는지. 왜 갈수록 웃음이 나오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잘해주지만 가족들에게 살갑게 못하는 내가 이해 안 됐었다. 가족들도 그랬다.


이제야 조금 알게 됐다.


그제야 내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상처를 덮어두고 살아가는 바람에 올바르게 상대방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상처의 대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오랜 시간 가장 힘든 건 죄책감이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죄책감.


가족은 그저 나를 힘들게만 하는 존재라는 뿌리 깊은 경험...


아이와의 대화가 아주 의미 있었고 끝까지 경청해 준 셋째에게 참 고맙다.


어쩌면 나는 지금부터라도 사랑다운 사랑을 하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를 해본다.


산너머 산이지만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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