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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Jul 05. 2019

『숨』 테드 창의 즐거운 코스 요리

[도서] 테드 창의 『숨』

  날이 선선해지면 끼니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따듯한 국밥 한 그릇이다. 설렁탕, 소고기국밥, 순대국밥, 선짓국, 해장국, 곰탕…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당기는 국밥은 바로 싱싱한 굴이 들어간 굴국밥이다. 신선하고 탱탱한 굴로 만든 굴국밥을 한 숟갈 퍼먹으면 마치 겨울 바다 앞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그맘때가 제철인 굴과 그것으로 만든 굴국밥은 추위를 타는 내가 겨울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굴국밥을 믿을만한 식당에 가서 사 먹기도 하지만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어디서 신선하고 실한 굴을 구하면 집에 가서 굴국밥을 만들어 먹을 생각에 군침부터 돈다. 보통 사 먹는 굴국밥은 깔끔한 맛이 좋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굴국밥은 굴을 마음대로 넣을 수 있어 좋다.


  굴국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육수를 내야 한다. 육수에는 멸치, 새우, 파뿌리, 양파, 건고추, 통마늘, 다시마 따위가 들어가는데, 재료는 사정에 따라 더 들어가기도 하고 덜 들어가기도 한다. 이때 육수를 너무 진하게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육수가 진하면 굴 향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굴국밥에 들어갈 채소를 손질한다. 굴이나 채소는 익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 재료를 넣으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우선 무는 나박 썰기를 하고, 두부와 새송이버섯은 깍뚝 썰기를 한다. 대파는 송송 썰고, 부추는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썬다. 미역은 대파나 무와 비슷한 크기로 쪼개 준다. 끝으로, 굴은 소금물에 서너 번 헹구고 흐르는 물로 한 번 더 헹군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빼준다.

  모든 손질이 끝나면 냄비에 무를 넣고 달달 볶다가 미리 만들어 둔 육수를 부어준다. 냄비가 끓어오르면 미역, 두부, 버섯, 대파를 넣는다. 다시 냄비가 끓어오르면 굴을 넣고 잡내를 잡아주기 위해 맛술을 조금 넣는다. 또다시 냄비가 끓어오르면 달걀을 하나 넣고 굵은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한 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넣는다. 끝으로 부추를 한 줌 넣어주면 굴국밥이 완성된다. 일단 육수를 냄비에 부어주면 밥을 미리 퍼 둬도 될 정도로 정말 일사천리로 완성된다.


  창작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굴국밥을 만들려면 반드시 주재료인 굴이 있어야 하고, 창작물을 창작하려면 모티브가 있어야 한다. 창작자는 굴을 만들 수 없다. 물론 창작자가 만든 창작물이 다른 사람에게 모티브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굴은 아니다. 또한, 요리사가 재료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들어낼지는 요리사의 능력에 달린 것처럼, 창작자가 모티브로 어떤 창작물을 만들어낼지는 창작자의 능력에 달렸다. 시들시들한 굴로 먹을만한 굴국밥을 만들 수도 있고, 탱탱하고 실한 굴로 비린내 가득한 굴국밥을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굴전이나 굴밥을 만들 수도 있다.


  나는 테드 창의 『숨』을 읽으면서 그가 참 뛰어난 요리사라고 느꼈다. 그는 책의 끄트머리에 이야기의 모티브를 적어두었다. 그것을 통해 책의 재기 발랄한 이야기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테드 창은 보통 다른 양질의 텍스트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만약 ~면 어떨까?'라는 상식을 뒤집어버리는 독창적 상상력을 통해 놀라운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테드 창은 괜히 뛰어난 SF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니었다. 

  테드 창은 자신이 갖은 재료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요리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낼 줄 아는 빼어난 요리사다. 『숨』은  그가 개발한 빼어난 코스요리고, 그것을 읽는 것은 맛있는 요리로 가득 찬 그 코스요리를 먹는 것과 같다. 모든 요리 한입 한입 놀랍고 코스 내내 즐겁다.

  근데 그의 요리를 즐기는 동안 나도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만약 좀 더 근사한 테이블에 요리가 놓였다면 어땠을까? 번쩍번쩍 거리고 두툼한...'




숨 / 테드 창 지음 /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


테드 창의 『숨』


테드 창의 환상적이고 우아한 SF의 세계!

4번의 휴고상, 4번의 네뷸러상, 4번의 로커스상 등 최고의 SF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한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 『숨』.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후 17년 만에 펴내는 이번 소설집은 로커스상, 휴고상, 영국과학소설협회상을 수상한 표제작 《숨》을 비롯해 총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테드 창은 훌륭한 SF는 아름다움과 의미와 공감을 자아낼 수 있음을 증명해낸다.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연금술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20년 전에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과거를 향해 세월의 문을 통과하는 푸와드의 이야기를 담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등장인물도 없고 대화도 없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확실한 실증이 있을 때, 그것이 인류에게 불러일으킬 결과에 대해 말하는 짧은 소설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의 작품과 이 책을 통해 최초 공개되는 인간은 정말 우주의 중심적 존재인지 묻는 《옴팔로스》, 여러 개의 세계에 여러 개의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등 신작 단편까지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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